새벽집회·성경공부·축호전도·저녁집회로 이어진 사경회가 한국교회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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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집회·성경공부·축호전도·저녁집회로 이어진 사경회가 한국교회 살렸다
  • 송영락
  • 승인 2007.06.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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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교수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 대부흥 이야기'<5>

장대현교회의 특별집회 소식은 곧 평양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식은 평양근방 뿐만 아니라 전국에 널리 퍼져나갔다.

 

“평양을 중심으로 사방 백 여리 밖에서까지 교인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까지 모여들었고 집회는 은혜의 동산으로 화했습니다. 회중은 교회를 떠나려고 하지 않아 수백명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새벽기도회와 성경공부 시간을 막론하고 저녁 집회 수효에 못지않았고 집회마다 만원이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사람들은 길선주의 성경해석에 도취되었습니다.”

 

12월 29일 토요일 특별집회 넷째 날이었다. 이날 길선주는 사도행전 5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성령 앞에 숨을 자는 없다”는 제목의 메시지를 전했다.

 

“만유는 하늘을 피할 수 없고 물면에서 하늘이 그 자체를 감출 수 없습니다. 만성령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없고 불꽃같은 그의 시야에서 죄를 감출 수 없습니다. 양심은 언제나 내 비행을 호소하기에 마음의 괴로움은 그칠 사이가 없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선생의 설교는 회중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의 간증이 이어졌고 회중의 울음소리는 장내에 가득하였다. 이날 승복을 입은 승려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길 장로님!”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는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저는 귀 교회에서 장로님의 인도로 큰 기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수일 째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 회합의 광경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장로님이 설교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이 사파 세계에서 진정한 화평을 얻는 길이 그리스도이심을 이제 비로소 알았습니다.”


염주를 집어던진 승려 김덕엽

그 현장에 있었던 한 목격자가 증언한 대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승려는 자신의 팔목에 끼었던 염주를 길 장로에게 건네주면서 “길 장로님께 이것을 드립니다”고 말했다. 그것은 10년간 불도를 닦았던 승려의 염주였고 그 염주에는 김덕엽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길선주는 그를 위해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곳에 모인 온 회중은 사람을 감화시키고 마음에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사하면서 하나니께 영광을 돌렸다.

 

12월 30일 주일날 다섯째 날 특별집회가 시작되었다. 이날 세 번에 걸쳐 길선주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진리에 대한 해석적인 설교”를 외쳤다. 조나단 위드워즈나 조지 휘필드가 증언하는 것처럼 “칭의”에 대한 가르침과 확신은 부흥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다. 길선주가 이를 알고 칭의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가한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길선주의 이날 설교는 기왕의 영적 분위기를 더욱 은혜롭게 만들었다.

 

12월 31일 월요일 마지막 집회가 진행되었다. 이날 길선주는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온 이들에게는 무궁한 영원세계를 준비하셨다는 내세와 천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길선주는 새 예루살렘을 중심한 영원한 세계의 광경을 청중들에게 그림처럼 잘 설명했다. 차트를 만들어 종말론의 구조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길선주의 설교는 많은 참석자들의 심령에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이날 장대현교회 특별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부르는 찬양 소리가 평양 전역으로 메아리쳐 울렸다. 이날 법복을 입은 한 가톨릭 신부가 일어나서 간증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기독교의 구속 역사를 처음으로 체험했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기적을 친히 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천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영광에 참여한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고, 또 천주님의 사람의 폭이 그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감격해서 받은 은혜를 간증합니다.”


이날 신부는 자기 목에 있는 염주를 벗어 “이 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기념으로” 길선주 장로에게 건네주었다. 이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아멘으로 화답했고 이날 집회가 끝난 후에도 회중은 헤어지기를 아쉬워했다.


다시 불붙은 선교사들의 정오기도회

저녁특별집회는 이어 1월 2일부터 열리는 평안남도도사경회를 위해 종식했다. 선교사들은 저녁집회 대신 정오시간에 모여 계속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1월 2일 장로교 사경회가 시작되나 매일 드리던 우리의 저녁 기도(집회)모임은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도 강력하였다. 대부분의 감리교인들이 지방에 가야 했지만 참석할 수 있는 선교사들만이라도 사경회 기간 동안 매일 정오 기도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길함이 “어떻게 평양에 성령이 임했는가”에서 증언한대로 이 정오기도회가 한국교회 영적각성운동을 위한 벧엘의 사건이었다. 1906년 하반기에 한국인들은 새벽에 모여 이 땅에 부흥이 임하기를 소원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영적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겨울남자 도사경회가 열린 것이다. 이 사경회가 열린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었으나 선교사들의 편지와 일기 그리고 보고서를 종합하여 200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집필하면서 선명하게 드러나게 됐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블레어가 골드 인 코리아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하였고, 북장로교보고서에 일부가 나타나고, 그 현장에 있었던 번하이젤선교사가 자신의 일기에서 겨울사경회가 1월 2일부터 시작되었고, 저녁집회는 6일부터 열리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아내 헬렌과 번하이젤)는 함께 즐겁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1월 2일에 시작된 겨울사경회에 몰입했다. 그 다음 주 6일부터 15일까지 영적생활을 강화하고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저녁집회를 열었다.”

 

해마다 신년 1월에 열리는 도사경회는 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사경회로 그 열기가 대단했다. 한국의 각 교회와 시골에서 사경회와 순회 사경회를 개최했고 선교부는 10일 혹은 2주 동안 도사경회를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사경회는 보통 5시에서 6시까지 열리는 새벽기도회, 교회의 크기에 따라 반으로 나뉘어 진행하는 9시에서 10시까지의 성경공부, 10시부터 10시45분까지 기도회, 그리고 15분간 휴식하고 11시에서 12시까지 성경공부를 계혹했다. 오후에는 2시부터 3시까지 성경공부를 하고 그 후에는 교회 중직자나 교역자들과 함께 이집 저집 전도하고 전도한 이들을 대상으로 저녁에 전도집회가 열렸다.


사경회는 참석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배우고 비전을 공유하는 동안 도 내 교회들과 교우들을 신앙 안에서 하나로 연합 결속시키고 참석자들 가운데 영적각성을 사모하도록 만들어줬다. 평양에서 열리는 도사경회의 경우 약 1천명에서 1천2백명의 각 교회의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16km에서 110km까지 먼 곳에서 걸어서 왔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경비로 참석했고 사경회 경비를 위해 약간의 회비를 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평안남도도사경회는 지방에서 올라온 약 1천명이 참석했고, 낮에는 반으로 나뉘어 성경공부를 했으며 2주간의 낮 집회에 평양시내 교우들은 참석이 허용되지 않고 모두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이었다.

 

여자들은 장대현교회에 자리가 없어 사창골교회, 산정현교회, 남문밖교회, 서문밖에 있는 사랑채에 모여 선교사들의 아내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했다. 평안남도도사경회에서 길선주와 선교사들이 설교를 전담하였고, 선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았다.


한국의 첫 번째 오순절 이야기

매일 저녁 약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저녁집회의 열기는 시간이가면 갈수록 그 열기를 더해 갔다. 저녁집회 마지막 이틀간에 놀라운 영적대각성운동이 폭발한 것이다. 1월 14일, 15일 이틀 동안에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역사라고 평가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첫 영적대각성이 나탄 것은 14일 저녁집회 때였다.

 

블레어가 인도한 12일 토요일 저녁집회 때 몇 명의 남자들이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형제를 미워한 죄를 고백하면서 영적인 분위기가 뜨겁게 조성되는 듯 했다. 블레어는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을 가지고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미움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설교하면서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냥을 하다 한 손가락 끝에 총에 맞아 상처가 났을 때 얼마나 전신이 고통스러웠는지를 간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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