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비평 - 개혁주의와 산아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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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비평 - 개혁주의와 산아제한
  • 승인 2001.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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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제한은 어떠한 형태로든 거의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시행되어왔다. 현대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 발생할 임신의 기회가 대폭 감소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별다른 의식 없이 출산을 제한하고 있다. 산아제한에 대한 윤리적 타당성 여부는 교회 속에서 계속 논의되어온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산아제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산아제한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자연스런’방법으로 출산을 제한하는 것은 허락하면서 인공적인 피임은 악한 것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의 뿌리는 어거스틴에게 있다. 그는 성행위의 목적을 출산으로 보고, 욕정을 위한 성관계를 부적절한 것으로 제한했다.

아퀴나스 역시 “후손이 뒤따르지 않는 모든 성행위”는 “자연을 거스르는 악”이라 보았다. 20세기 바티칸 역시 부부간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연합과 출산이라는 두 가지로 인정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결성”이 있으므로, 인위적인 피임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한 “범죄적 남용”이라 선언하며 전통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와 달리, 대부분의 개신 교회는 결혼 내에서의 피임 사용에 대해 개방적이다. 그 배경은 종교개혁 자체에 있다. 결혼의 가치를 정절, 후손, 성례를 통해 생각한 어거스틴과 달리, 개혁자들은 결혼의 성례적 의미를 거부했다. 그들은 결혼을 반려자와 함께 하는 즐거움의 한 근원으로 보며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성행위의 역할을 보다 넓게 이해했다.

나아가 개혁자들은 사회적인 삶 못지 않게 개인적 삶의 영역을 가치 있게 여겼다. 삶의 여러 가지 영역이 개인의 책임에 맡겨져 있고, 결혼 안에서의 성관계는 결혼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해 최선의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개인적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종교개혁자들이 피임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환영한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과 예수님이 자녀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실과 피임에 뒤따르는 실제적인 문제, 즉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위험과 부작용을 들어 산아제한을 반대한다. 이들은 결코 사소하게 넘길 문제들이 아니지만, 자녀의 중요성을 수용한다고 하여 산아제한을 꼭 반대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부부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자녀에 대한 부부 편에서의 개방성이다. 그리고 여러 위험이 있지만 의학의 발달로 피임의 방법은 다양해졌고 많이 안전해졌다.

개신 교회가 산아제한을 타당하게 여기는 이유는, 첫째, 산아제한이 성행위의 의미를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혼 내에서의 성관계를 출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부부간의 성행위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언약의 아름다운 표현이고, 배우자에 대한 상호 복종의 한 표현이며, 두 배우자의 결혼 유대를 넘어서는 개방성의 한 표현이다(S. Grenz).

여기서 성행위와 출산 가능성의 관계를 밀접하게 보여주는 것은 세 번째이다. 성관계가 갖는 이런 여러 의미를 생각해 보면, 연합과 출산을 항상 함께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부부간의 성행위는, 임신 가능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자간에 상호 복종적 헌신을 교환하며 결혼언약을 새롭게 확인하는 의미 있는 행위이다.

둘째, 결혼 내의 성관계는 부부의 결단과 책임에 맡겨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이기적 쾌락과 양육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유에서라면 이는 하나님의 선의를 저버리는 건전치 못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자녀 양육에 고비용이 드는 현실에서, 부부가 그 가족의 규모를 제한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인구조사국은, 현재 약 61억인 세계인구가 2013년엔 70억, 2028년엔 80억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현대 상황에서 책임 있는 가족 계획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다. 산아제한은 부부간의 언약과 상호복종과 새로운 삶에 대한 공개성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가족적 책임을 다하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강인한(천안대 기독교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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