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시비 논하기 전 원로목사 '수렴청정'부터 단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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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시비 논하기 전 원로목사 '수렴청정'부터 단절해야
  • 이현주
  • 승인 2007.04.1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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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위해 교회가 버려야할 것들 3 <목회세습>
▲ 동광교회 김인호목사는 20여년 간 사역한 교회를 떠나며 퇴직금을 헌납하고 교회출석 대신 자비량 농어촌 부흥사역에 나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한국교회 개혁과제를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목회세습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성도들의 공동체인데 교회가 담임목사의 소유처럼 사유화되고 부와 권력이 가족에게 이양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목회세습이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주로 70~80년대를 거치면서 대형교회가 등장했고 90년대 대형교회는 절정을 이룬다. 교회를 개척하고 이를 크게 부흥시킨 1대 목회자들의 퇴임이 본격화 된 것이 90년대 중후반으로 한국교회 곳곳에서 목회세습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사실 당시의 비판은 일단 “세습”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기업들도 경영권을 계승할 때 언론의 뭇매를 맞거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적 윤리에 위배된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경영권 계승이 기업의 유지와 발전에 저해될 수 있으므로 사회적 이익을 위해 전문 경영인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교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세습에 대한 반대론을 펼쳤다. 특히 교회가 담임목사의 사유물로 여겨지는 행태에 대해 비판하면서 세습을 “왕권의 이양”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세습 논란이 시작된 지 아직 10년이 채 안됐고 목회세습의 결과는 검증단계에 와있다. 세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보다는 교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최선인가를 고민하는 너그러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세습에 대한 결과물이 긍정과 부정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후임자 선정 과정에서의 개혁과제를 폭넓게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습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던 90년대 후반 무렵, 강남의 모 교회는 아버지의 목회를 계승하겠다는 자녀가 나서지 않아 은퇴와 더불어 후임을 청빙했다. 하지만 후임자의 목회사역은 도중에 교체됐고 원로목사는 다른 목회자를 다시 강단에 세웠다. 후임자의 사역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두 번째도 마찬가지. 결국 이 원로목사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아들을 신학을 가르친 후 불러들였다.


강남에 위치한 또 다른 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은퇴 당시 30대인 자신의 아들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당시 기독교 사회단체들은 목회 세습을 반대하는 성명과 시위를 전개하면서 한국교회의 부당한 움직임에 거세게 항의했다. 앞선 사례와 다른 점은 아들이 목회자로 소양을 갖추도록 미리미리 준비했고 이미 개척의 경험도 있다는 것.

화곡동의 한 교회 역시 아들에게 목회지를 내어주었고 이러한 사례는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담임목사가 정치적인 인물이면 목회세습에 그 교회가 세간에 드러난 만큼 목회 세습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나마 조용히 교회 잔치로 치루고 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교회뿐 아니라 법인의 운영권을 물려주는 편법적인 세습도 나타나고 있고 진보- 보수 등 교단 성향과 상관없이 기득권이 있는 곳에서는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목회 세습 무엇이 과연 문제일까. 첫째는 대형화의 뒤에 물신의 숭배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가난을 물려주는 목회자는 없다는 점에서 세습의 문제를 짚어 낼 수 있다. 마치 왕국의 왕권을 물려주듯 세습이 자행되고 있다. 작은 교회에는 없는 것, 하지만 대형 교회에는 있는 것이 바로 세습인 것이다.

최근 대형교회는 민주적인 교회 절차와 형식을 밟아 후임자를 청빙하고 이 과정에 아들이나 친인척을 끼워 넣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담임목사의 독재적 권한이 담겨져 있다.


담임목사의 아들이 청빙자 후보에 올라 있을 때, 과연 누가 “옳지 않다”고 직언을 할 것이며 어느 성도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습이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또 한가지는 ‘불로소득’에 있다. 아무런 노력없이 재산과 권리를 계승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가진 지위를 그대로 이어 받는 것은 경쟁사회에서는 보기 불편한 모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자본화, 물량화되면서 세간에는 부의 세습과 권력의 세습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도덕적인 문제제기나 비판없이 이제는 부모의 직업이 세습되고 재산과 권력이 되물림 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한 세기를 넘겨야 평가되는 것처럼 목회세습에 대한 평가 역시 섣불리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 신학자는 지적했다. “세습을 하지 않고 정당한 청빙 절차에 의해 후임을 세운 교회들의 분쟁 사례가 많아지고 공동체가 깨지는 안타까운 현상을 목격하면 차라리 목회 철학이 일치하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도 나을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강남지역 대형 교회를 둘러싼 목회세습의 논란이 진정된 2007년, 다시 문제의 교회를 들여다보면 안정적인 교회의 유지가 긍정적인 측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목회 세습을 경험한 한 교회의 성도는 “설교 스타일이나 목회 사역의 방법 등이 아버지 목사님과 흡사하고 오히려 성도들에게 평안함을 준다. 또 원로목사를 존경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성도들은 은혜를 얻는다”고 말해 목회 세습이 교회 구성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피력했다.


세습을 하지 않고 다른 후임자를 청빙한 교회들이 삐걱대는 것도 세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교회의 경우 후임과 원로목사의 갈등으로 결국 교회가 양분되고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보기 흉한 모습을 드러냈고 장로교회 모교회격인 Y교회는 담임목사가 수차례 바뀌면서 교회가 계속 혼란한 상황에 빠져있다. J교회 역시 검증되지 않은 후임으로 인해 교회가 구설수에 오르고 성도들의 이탈이 이어진 바 있어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공동체 유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아이러니한 반응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세습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세습 이면에 나타나는 ‘원로목사의 기득권’에 대한 분석이다.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는 “목회 세습은 반드시 막아야 할 부정적인 산물이며 그 이면에는 절대 왕권을 휘두르는 담임목사들의 인본주의가 깊게 뿌리박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를 힘들게 개척하고 내가 애써 키워낸 교회이므로 대부분의 기득권을 목회자 자신이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한 세습과 권력 이양 후의 부작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러한 담임목사의 기득권을 ‘수렴청정’이라고 표현했다. 아들에게 목사직을 승계하는 것도 후임을 앉히고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경우 교회 내분을 조장하는 ‘수렴청정’이 먼저 없어져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후임자 선정 후 교회 분열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교회가 원로목사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경우다.


아름다은 은퇴로 다른 삶을 개척하지 못하고 매월 한번 이상 설교를 해야 하고 성도들의 막강한 지지를 유지하고 재정과 인사문제에 간여하는 원로목사의 수렴청정이 없어지지 않는 한 목회 세습도 사라질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01년 대치동에 위치한 동광교회에서는 아름다운 은퇴가 화제가 됐다. 21년 개척해 온 교회를 후배에게 선뜻 내어준 김인호목사가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후배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이야 뉴스가 될 수 없지만 김 목사는 아들과 사위, 조카 등 집안에 수많은 자원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목회철학을 잘 계승할 수 있는 후배를 후임자로 선정했다. 또 후임자의 사역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교회출석을 거절하고 퇴직금과 자신이 소장했던 장서 2천여 권을 교회에 헌납했다. 은퇴 후 그가 펼친 활동은 농어촌 미자립 교회 순회 부흥사역. 이 사역은 7년째 계속되고 있고 노목사의 뜻을 이어받은 성도들이 자비량 사역을 후원하고 있다.


30년 간 사역해 온 부광교회를 후배에게 내어준 고흥배 원로목사도 부담을 덜어 주겠다며 교회에서 먼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원로목사의 영향이 남아 있는 한 후임자들이 자유로이 목회의 뜻을 펼칠 수 없다며 스스로 교회를 떠난 것이다.

목회 세습 논란 10여년. 망우리에 모 교회가 30대 아들에게 목회 세습을 결정하면서 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섣불리 무조건 세습은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노력으로 부흥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개인의 소유로 인식하는 물질관과 인본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원로목사의 ‘수렴청정’이 사라질 때 세습에 대한 비판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23년 간 사역한 목회지를 떠나게 된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는 은퇴 예배에서 “명한대로 행했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한 뒤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말로 은퇴의 소감을 밝혔다. 후임에 대해서도 전혀 개입하지 않은 임목사는 “교회는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떠났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크기와 재산과 공동체를 유지-보호하기 위해 꼭 맞는 후임을 선택해야 한다는 인간적인 지혜보다 “교회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목회자의 원칙적인 ‘신앙고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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