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초대석 - 부흥사역 40주년 맞은 신현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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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초대석 - 부흥사역 40주년 맞은 신현균목사
  • 승인 2001.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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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복음화 위해 마지막 혼신 다할 터”

올해로 부흥사역 40주년을 맞은 신현균목사(성민교회 원로목사)를 만나 지난 40년에 대한 소감과 함께 침체된 한국교회 부흥운동 방향 등에 대한 비전을 들어본다.

부흥사역을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요?

▶ 1961년 9월 27일 해군 군목을 사임하고 서울의 남부교회로 부임하기 직전, 부산 시온교회 부흥회에 참석해 간증을 듣는 중 성령을 사모하게 됐고, 6시간 30분동안 기도한 결과 이튿날 새벽 강한 성령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거의 한주간도 거르지 않고 부흥회를 인도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5천여 교회와 해외 54개국 정도를 순회했지요. 결신자만도 대략 34만여명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중심에서 달려오신 40년의 감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 부흥운동이 한국교회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1907년 부흥운동을 1기라고 한다면 6,70년대 부흥운동은 제2기라고 봐야죠. 당시 77성회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였지요. 지나고 보니 초창기부터 은퇴한 지금까지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음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40년 부흥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 인물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 뭐니뭐니 해도 ’77성회라고 여겨집니다. 한국에서 한국목사에 의해 주도된 ’77성회는 세계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1백50여만명이 모였으니까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인물은 빌리그래함과 한경직, 이성봉목사님입니다. 한목사님은 제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이목사님은 물질과 교만, 이성의 유혹을 넘어야 ‘장거리 부흥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동안 한국교회는 부흥운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으신지요.

▶ 부흥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무엇보다 부흥사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도 7백여명의 부흥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는 실력과 영력을 갖춘 부흥사들이 있는가 하면 신학적 소양과 인품이 부족한 사람도 적지 않아 피해를 당한 사례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 부흥사들은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공부하는 부흥사’, ‘청렴한 부흥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저도 그 일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계획하고 계신 것이나 소망이 있으시면 들려주시죠.

▶ 저의 부흥사역 40년은 분단된 이 민족의 아픔과 함께 지나왔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속에서도 민족복음화만이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믿고 평생을 민족복음화운동에 몸바쳐 왔지요. 특히 1998년 평양 봉수교회 분단후 최초로 드린 ‘남북공동예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2002월드컵대회를 앞둔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베니힌과 아나콘디아 같은 세계적 부흥사들과 함께 대규모 ‘세계선교대회’를 직접 인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 내년으로 계획된 김일성광장 집회도 현재 긍정적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편 신현균목사는 지난 97년 성민교회를 은퇴한 뒤, 원로목사로 있으면서 현재 민족복음화운동본부와 복음주의기독교총연맹 총재, 재단법인 민족통일선교협회와 사단법인 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이사장 등을 맡아 꿈에도 소원인 ‘민족복음화’와 ‘민족통일운동’에 마지막 혼신을 다하고 있다.

장형준부장(hjja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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