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5>-하나님의 명령어긴 ‘분열’…지금이 부흥 ‘최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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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5>-하나님의 명령어긴 ‘분열’…지금이 부흥 ‘최적기’
  • 송영락
  • 승인 2007.03.08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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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분열한 한국교회-교단분열보다 개교회 분열 심각한 수준

한국선교 이후 끊임없이 분열한 한국교회. 크고 작은 교회의 내분과 분쟁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국교회의 한계와 회개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120년의 한국교회는 ‘부흥과 분열’이란 상반된 영역을 오가며 성장해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한국교회는 ‘이합집산’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격하지 않다. 현재도 이같은 분열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특정 집단 이익 위한 교단분열

기독교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을 이뤘지만 상대적으로 세계교회사에서 찾아 불 수 없는 ‘분열사’를 보여줬다. 비록 세계교회사도 분열과 개혁을 통해 부흥해 왔다고 하지만 한국교회처럼 이유없는 분열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교회 분열은 분열을 위한 분열,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았다. 신학의 차이보다는 특정집단이나 특정인의 이익을 위한 세속적인 분열이 주류를 이뤘다. 예를 들어, 교단분열 이후 20여 만에 교단합동을 성사시킨 합동과 개혁은 세속적인 분열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합동과 개혁의 분열은 호남의 대부인 ‘고 정규오목사’에 의지에 따른 분열이었다고 해석해기도 한다. 비록 겉으로는 신학적인 문제가 대두됐지만 내부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감정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호남목회자들과 영남목회자간의 감정적이 대립이 분열의 결정적인 역할을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후 ‘고 정규오목사’는 삶의 마감을 준비하면서 분열에 대한 죄책을 고백하면서 합동과 개혁의 합동추진을 후배들에게 부탁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합동과 개혁은 통합됐다.

최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교단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와 비슷하다. 특히 군소교단은 철저하게 몇몇 교단실력자에 의해 교단통합과 분열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교단의 실력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교단의 방향이 바꾸고 있다. 이런 명분없는 교단분열은 특정 교단실력자의 돈과 명예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씻을 수 없는 개 교회 분열

교단의 분열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은 개 교회 분열현장이다. 한 가족으로 지냈던 공동체가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통합측 소속 모교회는 통합교단의 대표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총회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분열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간의 불신으로 시작된 모교회 분열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미완의 사건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몸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로 돌변한 분열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 담임목사와 장로간의 갈등도 최근 부쩍 늘었다. 의정부의 모교회는 담임목사와 장로간의 세력다툼으로 시작된 분열이 교회재산을 나누면서 결론을 맺었다. 2~3년 동안 진행된 끝없는 법정싸움으로 양측은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만 갖게 되었다.

 

개 교회분열은 대형교회나 중형교회만이 겪는 전유물이 아니다. 개척교회도 심각하다. 인천의 모 교회는 30여명의 성도였지만 최근 급속하고 부흥하는 교회였다. 안수집사가 담임목사와 갈등하면서 교인의 절반을 데리고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 교회 예산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 벌인 감정대립의 원인이었다.


정치목사와 교회 분열

이런 개 교회 분열에는 소위 ‘정치목사와 장로’들이 중재란 명목으로 개입하고 있다. 투명한 중재자는 꼬인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정치목사와 장로’들은 교인들의 의지에 아랑곳없이 철저히 특정그룹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교회를 화합시키기보다는 ‘특정그룹 편들기’, ‘합의금 배분하기’, ‘자기편 심기’ 등 세속적인 정치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철저히 교권의 힘을 업고 전횡을 휘두르고 있는 ‘정치목사-장로’는 군소교단일수록 대단한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교단통합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는 요점은 교회연합의 필요성이다.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의 큰 조직 속에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난제를 대처해야 한다. 교회가 나누어져 있는 한 어떠한 축복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나누어져 있는 동안에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통합이여야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특정 그룹의 이익을 위한 통합은 제2, 제3의 분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사는 분열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과거에 교회가 예리하게 나누어져 있을 때, 심지어 오늘날의 상황보다 더 예리하게 나뉘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아일랜드의 교회도 수없이 나뉘어졌다. 그때도 오늘날보다 더 심하게 많은 교단들이 나뉘어졌다.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 주셨고 성령을 부어주셨다. 부흥의 축복은 로마교회를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으로 나누었다. 한국교회에서도 교단 분열이후 기장, 고신, 합신은 교단 분열 이후 건전한 신학을 바탕으로 내실있는 교단으로 성장해 왔다.


평양대부흥운동의 통합운동

그래서 교회의 통합과 분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가고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한 것은 장로교와 감리교가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많은 부분에서 주의를 기울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05년 장로교와 감리교 소속 선교사 150명은 연합공회를 결성하고 효율적인 선교를 할 것을 결의했다.

 

다양한 연합운동 가운데 예배와 관련된 것은 통일된 주기도문과 찬송가의 사용이었다. 초기 한국교회의 주기도문은 여러 번역본들이 있었다. 양 교파에서 이처럼 통일된 주기도문을 사용함으로써 연합으로 예배하거나 교파 간의 교류가 있을 때 개인과 교회공동체가 동일하게 기도문을 암송하여 믿음의 일치를 이루어 부흥운동의 열매를 맺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찬송가도 양 교파가 서로 다른 것을 사용하다가 통일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선교 초기에 각각 다른 찬송가를 만들어 사용했다. 장로교는 1894년에 언더우드가 발행한 ‘찬양가’가 효시이며, 1895년 리 부인과 기포드 부인의 공동번역으로 출간된 ‘찬셩시’가 있었으며, 감리교는 1892년 존스와 로스와일러가 편집하여 출간한 ‘찬미가’가 최초의 찬송가로 그 후 ‘찬미가’는 계속 개정되어 수록된 찬송가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예배순서와 예문들이 담겨져 출판되었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공회는 연합 찬송가를 발행하기 위한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베어드부인, 밀러, 벙커 세 사람을 선임하였다. 이들이 1905년부터 편집을 시작하여 1908년에 ‘찬숑가’를 출판해 냄으로써 서로가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찬송을 같이 부르지 못해 즐거움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을 극복하게 되었다.


지금이 부흥의 시기

부흥의 시기는 참으로 엄청나게 메마르고 죽어 있고 무감각하고 생명 없는 시기 뒤에 왔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취하여 세상과 사회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래서 생명력과 활력과 능력과 증거와 그에 수반한 모든 것에 있어서 참으로 부족했던 때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절망적이고 긴박한 영적궁핍의 때가 있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높이 들려지고 능하게 부어주셨다.

 

한국교회는 뒤를 돌아다보며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무서운 골곡이 있었다는 것과 교회가 깊은 구렁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지금이 부흥할 수 있는 최적기라는 사실을 교회 부흥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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