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과 타협한 영적지도자 타락이 교회의 추락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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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과 타협한 영적지도자 타락이 교회의 추락 초래했다
  • 이현주
  • 승인 2007.02.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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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장이 멈춘 한국교회, 그 원인은 어디에 있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1907 평양대부흥을 수적 부흥보다 ‘질적 부흥’으로 평가한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김승태목사는 “1907년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70~80년대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교세가 꾸준한 성장을 보였다. 1907년 장대현교회 사경회 이후 성도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괄목할만한 수적 성장은 아니다. 다만 성도들의 영적 회복과 도덕적 회복이 있었다는 점에서, 또 초기 교회에 멋모르고 출석하던 교인들이 참 신앙을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질적인 성장이 더 높게 평가된다”고 말했다.


물론 수적 성장이 아예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1907년 이후 시작된 백만구령운동은 이내 목표를 달성했고 70년대 말까지 한국교회 성도 수는 7백만 명을 넘어섰다.


어떻게 이 같은 부흥이 가능했을까. 한국교회 성장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선교학자인 호남신대 김동선교수는 서구 선교단체들이 부흥의 견인차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CCC와 IVF 같은 캠퍼스 선교단체와 미국계 선교단체들이 대대적인 전도운동을 벌인 결과이며 70년대 빌리그래함 전도집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부흥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하지만 미국 선교단체에 의한 부흥은 결국 한국교회의 자생력을 잃게 만들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역사학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김승태목사는 "한국교회는 사경회와 새벽기도를 통해 교회 단위로 부흥했고 이것은 가장 한국적인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대형전도집회보다 개교회의 사경회가 부흥에 더 큰 몫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으며 해방 후에도, 한국전쟁 후에도 한국교회는 사경회와 새벽기도를 통해 성도들을 이끌어왔다고 강조했다.


분명한 것은 1907년 이후 한국교회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교회 성장에는 이유가 있다. 80년대 말까지 놀라운 성장을 보인 한국교회의 이면에 놓인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대부흥이 일어난 1900년대 초반은 한국사회가 일제에 강점되면서 절망에 빠진 시기였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절박했다.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은 곧 하나님께 빠져들었다.


해방 후 기쁨도 잠시, 한국사회는 다시 이데올로기의 분열로 인해 동족이 총부리를 겨누는 극한 상황에 처한다. 다시 절망에 빠진 것이다. 전쟁 후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들고 새벽기도와 사경회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부르짖었다. 특히 분단의 상황은 피난민을 교회로 몰려들게 만들었고 뜨거운 기도와 헌신은 직접 벽돌을 나르며 교회를 세우는 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했다.

70년대 이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군부독재와 민주화요구가 대립하면서 정치적 갈등과 탄압이 노골화 됐고 억압받는 민중들은 또 다시 교회로 몰려들었다. 기독교역사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교회의 진보와 보수가 교회 성장을 쌍끌이 했다고 표현한다.


보수권은 개인구원을 강조하며 전도에 나섰고 진보는 인권문제에 참여하며 사회선교라는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부흥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교회가 ‘해방구’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 즉 목사의 역할이다. 교회지도자들이 암울한 시대에 ‘희망’을 주는 푯대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칼럼을 통해 한국교회 위기를 진단한 바 있는 SPR경영연구소 서재경소장은 “한국교회 초창기 성직자들은 당시 대중들과 비교할 때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였다”고 설명했다. 신비한 하늘의 이야기뿐 아니라 어려운 세상의 지식에도 무불통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당시 목회자들은 시대의 엘리트요, 선생이요, 예언자요, 동시에 영적 지도자였다고 표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도들에게만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서소장에 따르면 교회가 퇴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1960년대부터 나타난다. “60년대 산업화 이후 신학교는 명문대학 반열에서 탈락했고 부실한 신학교가 난립하면서 부실한 성직자가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리더의 타락이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박사 역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단절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죄로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귀족화 되어 가고 있는 목회자의 죄를 꼽았다.

목회자의 타락 즉 리더십의 타락은 교회가 더 이상 시대의 푯대가 되지 못하는 한계로 이어졌다. 그리고 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90년대 초반이다.


김승태목사는 “한국교회 부흥이 정체된 원인은 외부에 있다.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교회도 물량화에 합류했고 사회, 문화, 정치 전 분야에 걸쳐 리더십을 발휘하던 교회는 경제와 소비중심의 시대인 90년대 들어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회적 매력을 잃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정과 타락에 둔감한 모습까지 보인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목회자를 시기하며 ‘이단’ 정죄를 밥 먹듯이 하다가도 사회법에서조차 파렴치하다고 판결받은 지도층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그지없다. 스스로 자정능력을 포기한 채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세상의 기준’인 돈과 권력, 명예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문화변혁의 세력으로서의 한국 초대교회- 그맞섬과 초월의 모습 복원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숭실대 기독교학과 박정신교수는 지난 6일 열린 숭실대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교세확장을 위해 돌진했고 돈과 권력, 명예를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교수는 “19세기말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데는 전통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맞섰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교회는 초기 기독교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재경 소장 역시 “교회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만성질환인 갈등과분열, 부패와 비리, 대립과 소외, 위선과 불의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비겁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교단 지도자 스스로가 부정과 부패를 저지름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조소를 받는 위기를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기독교의 쇠퇴 이유는 이제 명백해졌다. 타락한 지도자에게 귀를 기울일 성도는 없다. 타락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의를 구할 이유도 없다. ‘생명력’을 잃고 ‘예수’를 잃은 교회를 누가 교회라고 부를 것인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이 다시 오게 해달라고 목이 메도록 부르짖는 한국교회는 과연 어느 곳을 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의교회 원로인 옥한흠목사는 “목회자들이 물량주의에 빠져 성도를 끌어 모으는데만 급급했고 성도수를 의식하다보니 사람들의 비위에 맞는 설교만 했다”고 지적했다. 성장에 취해 자신이 저지를 수 있는 과오를 보지 못했다고도 말한다. 옥목사는 “교회가 사회악을 견제할 기능을 상실했고 이제는 교회의 말도 통하지 않는 불신을 겪고 있다”고 교회의 사회적 위상을 토로했다.


옥한흠목사는 이같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다시 부흥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해결은 목회자 자신의 철저한 회개에서 시작된다는 것. 예수님의 명령을 어긴 죄, 물량주의를 신봉한 죄, 제자를 양육하지 못한 죄, 회개와 거룩한 삶에 대해 성도들에게 선포하지 못한 죄 등을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 초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성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평양대부흥 100주년에 대한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 갱신해야할 대상으로 연합기관과 교단 지도자(44.7%)들이 손꼽혔다. 그 뒤를 목회자(20.2%)와 장로(17.1%) 등 직분자가 이어간 점도 눈길을 끈다. 또 부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46.9%가 ‘철저한 회개운동’을 꼽았다.


이미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정결한 부흥’을 끌어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많은 ‘선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OMF선교사 알반 더글라스는 회개의 과정을 이렇게 나열했다.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은 회개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다. 교만을 버리자. 두번째는 기도다. 하나님은 당신의 개인적인 죄를 입을 열어 고백하기를 원한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얼굴을 돌리셨다. 마지막으로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개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영성을 깊게 한다. 깊어진 영성은 세속적인 모든 쾌락이 결국 ‘죄의 길’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성장이 멈추었으니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 세상이 주는 기쁨을 버리는 것만이 이 시대에 다시 부흥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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