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희망을 또 다른 나에게 선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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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희망을 또 다른 나에게 선물해요”
  • 현승미
  • 승인 2006.12.29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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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가운데 희망을 찾아주는 알콜중독자의 보금자리 ‘제주 사랑원’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흑암이 짙은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한 줄기 빛으로 살아가는 이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끝에서 시작을 본다. 마지막까지 가보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다시 새로운 시작을 본다. 우리나라의 맨 끝. 땅 끝 마을 해남보다 더 아래쪽에 위치한 제주도. 제주도는 한 때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신혼부부들의 첫 여행지로 각광받기도 했다. 푸른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가족계획을 세우며 힘찬 시작을 다짐했다. 그 끝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작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아 갈 곳이 없는 치매 노인. 중풍으로 고통 받는 이들. 알콜 중독을 고치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발을 들여놓은 40-50대의 아저씨들. 아무런 조건 없이 따뜻한 엄마의 품으로 이들을 안아주는 곳이 있다.


제주 사랑원. 이곳에서는 그들의 모양새나 작은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눌한 말투 절뚝거리는 발은 함께 하는 이가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하면 된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앉은뱅이 아내와 앞 안 보이는 남편처럼 서로에게 눈이 되고 발이 되어준다.

▲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안는 손명숙 원장.

지금의 사랑원이 있기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원장 손영숙목사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도 최초 알콜 중독자 시설인 사랑원을 꾸려나가고 있다. 


“젊었을 때부터 특수사역에 대한 비전을 꿈꿨습니다. 그러다 85년도에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웬일인지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곳으로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무작정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지요.”


막상 비행기에 올랐지만, 당장 1시간 후에 자신이 머물 곳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비행기에 내려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마치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것처럼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지요. 그 분을 통해 성산포 신양리 한 개척교회에서 유치원 병설 교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덕분에 최소한 몸을 의지할 곳이 생겼다. 비행기에서 내려 곧바로 달려갔지만, 생각한 것보다 신양리교회의 상황은 열약했다. 마을회관에서 시작한 신양리교회에는 교인조차 거의 없었다. 그저 육지에서 시집 온 사람을 전도하는게 최선이었다. 처음에는 마을회관을 꾸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게다가 제주도 자체적으로 대학에 유아교육과를 신설하면서 자격증이 없는 손목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그때가 하나님이 주신 신호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손영숙목사는 개척을 하게 됐다. 그렇게 2년여. 아무리 사역을 향한 강한 믿음과 의지가 있더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자신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


“제주도의 유일하게 정신질환자와 알콜 중독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남편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지요. 아마 남편 자신이 나락에 떨어져본 경험이 있어서 더더욱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던 것 같아요.”


손목사의 남편은 3번의 자살기도 중에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됐고,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결정해주셨다고 믿은 그는 곧바로 사랑원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일방적인 믿음과 의욕, 남의 상처를 보듬는 남편의 마음이 헌신의 열정을 가진 손영숙목사를 만나면서 ‘사랑원’을 진정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갔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사랑원 설립을 반대하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고, 결국 1996년도에는 정식허가를 받아 2년 뒤 사회복지법인 브니엘을 세우게 됐다.


“언제나 고생을 감수하시며 저를 키워주시고 보살펴 주신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신지 4, 5년이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빈자리를 얼마나 잘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을지 암담하던 차에 사랑원을 소개받았습니다. 올해로 벌써 서른 네 살인데, 그동안 방황하며 살던 제가 얼마나 어렸었는지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다시 삶의 활력을 찾게 됐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던 소복백씨는 이곳 사랑원에 와서 새로운 삶을 선물 받고, 다시 한 번 스스로 서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홀로서기를 위해 최근 사랑원을 떠났다.


실제로 사랑원에서의 자활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 속에 발을 내딛는 이들이 종종 있다. 물론 그 중에는 피폐해진 마음을 갖고 다시 사랑원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연고도 없이 헤매다 이곳에 입소하게 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 사랑원 가족들의 대부분은 알콜 중독자가 많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정말 멀쩡한 모습으로 사랑원 문을 나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얻은 수입으로 다시 술을 사 마시고 돈이 떨어지면 사랑원이며 동네에서 술이 깰 때까지 난장판을 만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알콜 중독에는 완치가 없다.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에 따르면 알콜 중독에서 헤어 나온 사람은 7%에 불과하다. 결국 끊임없는 자신의 노력과 결심만이 새 삶을 선물할 뿐이다. 분명 하나님 앞에 굳게 다짐했건만 세상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고, 이는 결국 다시 술을 부른다. 술의 유혹에 이기지 못한 이들은 다시 흑암 속에 빠져들고 계속 되는 생활 가운데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나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버림 받은 채 스스로도 자괴감에 빠져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또한 스스로 자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밖으로 내보내 줄 수는 없지만,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일깨워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의 땅을 빌려 귤나무를 심고 직접 그들이 가꾸게 한다. 주변의 버려진 땅을 일구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가꾼 귤은 상자에 담겨져 전국의 각 복지단체로 전달된다. 마치 성탄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희망의 선물을 보내주시듯 사랑원 가족들은 또 다른 자신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제주=현승미기자>


▲ 매주일 지역교회에서 찾아와 사랑원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사진은 지난 `종교인신문협회 세미나`를 위해 제주도를 찾은 기독언론사 기자들이 특송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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