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축복과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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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축복과 경영
  • 윤영호
  • 승인 2006.12.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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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의 중앙에는 돈의 위력을 강조하듯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 미국 맨하탄을 신기루로 보는 것은 돈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삶의 중심을 차지한 ‘돈의 위력’  

고대에는 신전, 중세는 교회, 현대는 기업이 도시의 중심을 차지

물질중심적 가치관 판치는 사회 속 기독교 복음의 역할 고민해야


21세기로 들어선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   보다 더 형편없는 믿음생활을 하던 광야 40년의 이스라엘 백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형편없다. 이는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의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주의자들의 예측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이삭을 절대로 죽일 수 없을 것이란 확고함이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으므로 이삭의 생명권 역시 하나님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시간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 이스라엘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그것에 비해 크게 후퇴했던 것이 분명했다. 40년 광야여정 속에서 이스라엘은 믿음 없음을 드러내며 시련을 겪은 것이다. 첨단을 자랑하는 21세기,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주목해야 한다. 믿음 없이 이루어진 우리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는 지를 말이다. /


일반적으로 시간의 흐름은 사람과 환경을 진보시킨다. 빈약한 것을 풍성하게 하고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며 흉작을 풍년으로 만드는 등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충족시켜 준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부동산 소유경쟁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특히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인들이 무엇을 삶의 중심에 놓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화란의 자유대학교 폴 마샬박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삶의 중앙에 놓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 도시를 볼 때 그 중심부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라고 말한다. 문예비평가인 노스롭 프라이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 철학 군사전략 경제적 발전 그 무엇이든 우리의 문화가 낳은 산물에는 우연이란 없다. 한 문화가 생산해 내는 모든 산물은 똑같이 그 문화의 상징이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따라서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례를 보자.

중동이나 극동아시아, 중앙아메리카의 고대도시에 가면 도시중앙에 궁궐이나 신전이 있다. 흔히 궁궐이나 신전은 같이 취급된다. 많은 고대문명에서는 그곳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신으로 대우했으며 또 신과 똑같은 위치에서 예전을 지켰기 때문에 지배자는 곧 신이기도 했다. 애굽의 바로에서부터 아즈텍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공식적으로 신으로서 예배를 받았다. 도시 중앙에 궁궐과 신전이 있는 이유다.


중세 유럽도시에는 성당과 교회당이 중앙에 있음을 보게된다. 인간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 혹은 교회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였던 18세기에 형성된 도시를 탐구한다면 도시 중심에 궁정과 법원, 의사당 같은 건물을 보게 될 것이다. 즉 정치적인 건물들이 도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정치의식이 급부상하던 시기로, 국가가 곧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도시중심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가 현재 사는 이 시대를 주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중심의 실체는 무엇일까. 대개는 은행과 거대기업 건물 그리고 고층빌딩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돈 버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모양새를 띠며 변화되었을지 추론하면 사실 대답하기가 매우 궁색하다. 겸손과 양보와 정직과 근면을 상징하는 것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데도,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도시는 여전히 ‘돈 버는 것’이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를 뒤집어 놓은 것은, 솔직히 말해서 ‘돈버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윤택함을 가장 좋은 미덕이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증거물로 주장하곤 했다. 70년대의 새마을운동, 80년대의 올림픽 유치에 이어 벤처열풍과 신용카드 시대 등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은 ‘경제적인 여유만이 유일한 우리의 살 길’임을 주장해왔던 시기였다.

지금 우리 시대의 중심에는 ‘아파트’가 있다.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경제적인 여유만이 우리의 삶을 보장해 주는 유일의 통로임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물로 통한다.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인 주택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아예 아파트로만 구성되는 이른바 ‘뉴타운’은 자신의 재산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매매할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조치를 취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도시에는 어김없이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가 있다.

돈과 재물의 소유에 대한 경쟁은 사실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류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이 고질적인 문제는 우리의 죄성에 근거한다. 하나님께 예배문제로 아벨을 죽인 가인의 심리는 ‘경쟁’에 근거한다. 인정받아서 더 높아지려는 우월주의적 경쟁심리가 인류 최초의 살인죄를 범하게 했다는 말이다.

다 아는 말이지만, 처음에 우리가 찬사를 해 마지않던 바로 그 번영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경제적인 번영은 인플레이션과 위험한 에너지 개발, 지하와 대기 중의 유독성 폐기물의 축적, 산림벌목, 가공할 만한 무기의 개발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생산성증대는 도리어 노동 강도를 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 노동, 어린이 노동 등 이윤을 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각종 해악들을 창출해 내고 있다. ‘돈 버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21세기에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여기서 문제는 단 하나, 우리의 안전과 삶을 보장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라고 믿는 이 시대의 삶의 문화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의 옹위를 받으며 부를 축적해야 삶이 안전해 진다는 우리의 생각들이 매우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은 경계할 만하다. 풍요로움이 에워싼 복지국가의 실체는 사실 하나님의 보호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질적인 기반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의 실현은, 유감스럽게도 하나님 없는 국가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되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신앙과 관련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우리는 21세기를 살면서 매우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물어 보어야 한다.

신도시 뉴타운에 교회부지를 분양받은 것을 놓고 기뻐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교회의 가치는 영혼구원이 일어나는 기적적인 장소로서 놀랍기 보다는 엄청난 부동산 가격상승에서 비롯된 교회의 건물가치 상승 때문에 놀라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 과부의 두 렙돈에 감격하는 대신 교회건축에 내놓는 수 억 원에 감격한다. 가난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어서 빨리 부자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물질로부터 안전을 기대하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왜곡되고 변질되는 삶의 문화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물질만능의 도시면서 은행과 거대기업을 중심에 둔 도시로 만드는데 더욱 도움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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