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최선의 교회 선거방식일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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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최선의 교회 선거방식일까?(2)
  • 승인 2001.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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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제비뽑기는 ‘가장 정당하고 바람직한’ 선거방식인가?

앞서 살펴본대로 제비뽑기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편으로 종종 사용되었으며 신약시대에는 사도직을 임명하는데 단 한번 사용됐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거나 그것을 교회에서 선거방법으로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제비뽑기는 오늘날 교회선거에서도 사용되어질 수 있다. 문제는 제비뽑기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타락한 현실적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비뽑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본적인 동기를 ‘선거운동 과정에서 야기되는 금전수수의 작폐를 근절시키고 타락선거에서 빚어지는 망국병인 불법·부정을 개혁하며 분쟁과 분열을 종식시키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는 선거방식을 개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차마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한 의식구조와 선거풍토를 개혁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비뽑기는 다음과 같이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사도직 임명과 총회 임원선거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초대교회에서 사도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 2) 부활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 3) 요한의 세례 때부터 예수님이 승천하시기까지 주님과 함께 있었던 인물(행 1:21∼22, 10:39, 13:31), 4) 예수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사람이어야만 했다."

이에 비해 총회의 임원직은 사도직과는 전혀 달리 지교회의 치리와 행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각 노회들에서 선출된 총대들로 이루어진 최고 상회인 총회에서 각 부서에 분담된 고유업무를 수행하도록 위임된 직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도직이 제비뽑기 방식으로 정해졌다고 해서 총회임원도 유추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선출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은 무리한 논리전개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선출하려는 임원명단을 미리 짜 놓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오히려 위선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2) 교회의 모든 선거에 적용시킬 수 없다.

만일 제비뽑기가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거방식이라면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선거들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치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제비뽑기는 오히려 더 많은 혼선과 갈등을 빚게할 위험성이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한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두 사람 이상의 후보자가 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때 추천되어지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힘들겠지만, 일단 제비에 뽑혀지지 않은 목사의 경우 그가 현재 담임하고 있는 개 교회의 안과 밖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두 목사를 추천한 성도들의 숫자가 거의 비슷할 경우에는 교회 내분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지지를 덜 받는 목사가 제비뽑기로 정해진 경우에도 역시 어려운 문제점이 생겨나게될 수 있다. 또한 교회에서 장로, 집사, 권사를 제비뽑기로 선출한다면 역시 추천하는 과정에서부터 적지 않은 혼란이 빚어지게 될 것이고 일단 정해지고 난 후에도 그 뒷마무리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샤머니즘적 방식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리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이 정하신 뜻 그 자체라고 인정하기보다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소위 재수나 운이 좋아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샤머니즘적 생각에 빠져들게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더욱이 제비뽑기에 의해 선출된 교회 일꾼들이 과연 자신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 선출됐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갈 수 있는지도 의문시 되어 진다.

(4) 칼빈이 제비뽑기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제비뽑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칼빈이 이 제도를 찬성했다는 사실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칼빈이 성경의 근본적인 의미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성경적으로 해석했던 위대한 신학자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칼빈의 견해나 해석 그 자체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칼빈은 사도행전 1장 21절 이하에 나오는 제비가 하나님께서 찬성하시고 성령께서 지도하신 제도였음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이 제도의 시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상 신약성경에는 사도행전 1장의 사도직 선출 이외에 제비뽑기가 또다시 행해졌다는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비뽑기가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는데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이 소수의 선지자가 아닌, 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였으므로 굳이 제비뽑기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순절 이후의 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며 그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충분히 알리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됐던 제비뽑기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들이 교회 역사에서 사라지게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늘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성령을 통해 그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그의 뜻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직접 알려주실 수 있다. 물론 제비뽑기도 그 방식들 중에서 하나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가장 바람직하고 정당한 선거방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총회의 선거방식을 고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제비뽑기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근본적으로 부패되고 타락해 버린 한국 교회의 현실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도대체 총회선거에 ‘금전수수의 작폐’란 무엇이고 ‘불법 타락선거’라는 말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미 썩고 병들어 버린 한국 교계의 상위기관이 그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과연 그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지게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누군가가 말했듯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수고로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능히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큰 군대를 이룰 수 있게 하였다. 이제 우리는 제비뽑기 선거방식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 교계의 타락한 현실을 나타내는 수치의 대명사임을 뼈저리게 절감하면서 제도보다는 마음을, 방법보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개혁하는 일을 서둘러야만 할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그 일을 즉시 행해야만 한다. <끝>

고영민목사(기독신학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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