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비평 - 부자들을 위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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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비평 - 부자들을 위한 복음
  • 승인 200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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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난한 자의 문제는 심각하다. 세계 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약 60억 세계 인구 중 거의 절반인 약 28억 여명은 하루에 2불 이하로, 그 중에서도 12억 여명은 1불 이하로 목숨을 연명할 만큼 매우 가난하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자들에게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자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 못지 않게 부자들에게 필요한 복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실천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돈이나 재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 이유는 돈이나 재물 그 자체를 악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제한적인 사유재산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지만, 결코 일반적인 재산 포기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그 자신이 엄격한 금욕주의자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부를 부정적으로 가르치신 경우는 부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데 장애가 되는 한에서 반대하신 것이다. 재물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재물의 사용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누가 역시 예수님의 입장과 동일선상에 있다.

그러면, 왜 누가복음은 부에 대해 부정적 시각과 부자에 해한 경고를 담고 있는가? 이는 재물의 낭비, 재물에 대한 집착, 재물의 축적 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영적인 것이다.

첫째, 부와 재물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저버리게 만든다. 관원이었던 부자 청년이 주님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부를 고수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왜 소유물이 위험한 지를 잘 보여 준다.

둘째, 부는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자기 백성들도 갖길 원하신. 하지만, 부는 가난한 자에게 더 많은 동정을 품게 만들기보다는 부자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눅 16:19-31). 셋째, 부는 더 많은 탐욕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탐심의 본질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누가복음은 이런 위험을 내포한 부와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고 있는가? 그것은 부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재물을 일시적으로 맡은 청지기로 인식하고, 그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첫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기에 복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복된 자이다. 그러나, 누가가 말하는 가난의 의미는 영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기도 하다. 부유한 자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자신의 재산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보다 오히려 사회에서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이신다. 예수님 역시 그러하셨다.

셋째,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 포기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고, 실제로 여러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포기했다. 물론 그러한 포기는 재산의 의미 있는 포기로서 전적 헌신의 증거가 되었다. 이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범례적인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성경의 원리를 나타낼 때까지 베풀어야 한다(레 25장, 고후 8장). 인간이 하나님이 맡기신 자원과 재능의 청지기라는 인식을 진정 갖는다면, 자기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수적인 것 이상의 생산물을 소비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자원을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 함께 누릴 권리가 있고, 부자는 일을 통해 자활(自活)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다.

이러한 가르침의 적용은 우선적으로 교회에 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어진 현실은 세계 복음화에 큰 장애가 된다. 교회는 온 세계에 새로운 경제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전세계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눔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적용하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놀랍게 변화될 것이다.

강인한(천안대 기독교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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