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저출산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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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저출산의 위기
  • 윤영호
  • 승인 2006.09.26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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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적 저출산의 위기상황을 탈출하라
▲ 자녀양육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하지만 인본적 저출산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든다.

 

세대를 되살리는 기독교가치관    

우리나라 지난해 출산율 2년전 비해 0.08명 감소한 1.08명“세계최소 기록”

세속적 기준의 남여평등권 주장하며 출산기피하다가 미래세대 불투명 자초


양성평등의 시대를 맞은 21세기 한국사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저출산의 위기 앞에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세 자녀 낳기를 권장하며 보육비 지원과 아파트 분양 우선혜택 등 저출산위기 상황을 정책적으로 타개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지원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전문가들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근 미국언론들은 전세계적인 저출산 열풍 가운데 유독 미국사회에서만은 이같은 상황이 예외라고 주장한다. 여성평등권이 가장 잘 지켜진다는 미국사회와 이제 여성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완전히 반대로 진행되는 셈이다. 기독교 여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 크리스처니티 투데이(Christinity Today)는 최근호에서 전세계 저출산 상황 가운데 미국의 출산증가 현상을 ‘기독교가치관의 승리’라고 보도하면서 기독교신앙이야말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의 종교임이 다시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크리스처너티 투데이에 따르면, 무자녀운동이나 한자녀갖기운동은 야심찬 여성의 성공신화를 위해 꼭 벌여만 했던 여권운동의 한 전형이다. “나는 야심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을 안갖기로 했어요.”라고 미국의 인기영화 배우 캐서린 햅번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야심없는 여성들만이 아기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짐승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무자녀운동이 여권신장운동의 한 방편이었음을 회고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여권운동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한 무자녀운동이 아니라 여권운동을 필요로 했던 ‘그 시대의 경제적 요구’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할만큼 그 시대가 급격한 발전상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빈곤한 시대를 지나 산업발전을 이루던 시대에 여성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만약 출산문제로 여성의 노동력이 제발휘를 할 수 없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저출산 경향은 근대화 운동에 이은 여권신장운동과 연결 지어진 것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현대의 저출산은 왜곡된 성평등의 산물

근대화와 산업화시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서 나타난 저출산 경향은, 우리의 예측대로라면 여성의 권리가 상당부분 보장된 부유한 국가일수록 강하게 나타나야 마땅하다.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가 동등하다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저출산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해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같은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크리스처너티 투데이는 70년대부터 저출산대책을 강구하며 국가적인 정책을 수립한 일부 국가의 경우를 들며 최근 저출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미국 캐나다 등 평등문화가 자리잡은 국가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회복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그리스 등과 같이 평등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국가들의 경우는 여전히 저출산으로 걱정한다는 설명이다. 산업화의 여권신장이 저출산을 야기한다는 분석은, 남여평등권이 출산율을 정상화한다는 최근의 연구에 따라 새롭게 재조명돼야할  처지다.

일부 학자들은 산업화에 투입되어 여권신장을 경험한 세대들이 이제는 상위 고급문화를 체험하면서 직업과 출산을 서로 보장하는 소위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출산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미국사회를 바꾼 혁명적인 자녀계획

우리는 북유럽과 북미주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출산율을 보면서 매우 소중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른바 기독교신앙을 중시하는 문화배경의 공동체에서 정상출산율이 나타난다는 점이 그것이다. 세계도처에서 기독교 신앙이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증거가 실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확신에 의해 자녀를 갖지 않던 미국의 여성들이 둘 이상의 자녀를 낳기 시작했다. 그것도 고학력이며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 3명 이상의 자녀를 원하면서 힘들게 쌓아온 사회적 성취와 고수입의 직장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정으로 귀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 3월 USA투데이는 많은 부모들이 3명의 자녀를 두는 경향을 소개하며 미국여성들의 변화된 가치관을 비중있게 보도했었다.

이 보도에는 미국사회의 경쟁력을 갖춘 경제력이 출산율 상승을 자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95년부터 2000년까지 3~4명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들이 7%(1000명 당 18.4명)증가됐다고 조사했다. 여기에는 히스패닉계들도 한몫한다지만 미국 백인계 여성들에게도 급속도로 확산됐다는 보고다. 사회적 경력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시도로서 고학력 여성들이 직장에 장기휴가원을 제출하면서까지 셋째 아이를 출산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 보도의 설명이다.


기독교인이 주도하는 출산율 성장기록

언론이 제시하는 출산율 관련 집계는 산업화와 여권에 국한된 요소들이 대부분이지만, 인구학자들과 일부 언론들은 미국사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정 출산율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기독교적 마인드’가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이같은 추정근거는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도인들의 출산율이 미국사회의 출산율 대비 27%나 상회한다는 것에 있다.


세계를 위협하는 출산율 위기로부터의 구출‘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  필립 롱맨은 지난 3월13일자 USA투데이에서 “종교적 요인에 의한 높은 출산율이 결국은 세속적인 가치로 빚어낸 출산율 저하현상을 구원시켜줄 요소”라고 일갈했었다.

그는 세속가치관이 빚은 출산율 저하의 대표적 국가로 브라질을 들면서 1975년 이후 2.27명이었던 출산율이 갈수록 급감했다고 예를 들었다. 브라질의 출산율 저하 원인은 매우 놀랍다. 각 가정에 들이닥친 매체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정에 보급된 텔레비전과 인기있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출산을 기피해왔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얼마나 우리 인간을 우스운 상황에서 멸망으로 인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분위기는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발전된다. “성공하고 훌륭한 인생은 커뮤니티나 가족의 도움이라기보다는 자아실현과 자기를 성취해 나가는 자유라는 개인주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허구를 심어주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 그리고 경제적 성장은 인간을 개인주의로 치닫게 했으며 그 결과 가족공동체에 대한 무감각을 양산했다는 추론이다. 오히려 개인의 발전이야말로 꼭 성취되어야할 미덕으로 여겨져 남여평등권 실현을 출산기피로 연결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빚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이에 기독교 학자들은 “기독교커뮤니티(교회)를 중심으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가족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시킬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가족제도에서 형제자매들이 비록 싸우기는 할 것이지만 사랑의 윤곽을 체험하는 가운데 확산되는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맞대응하도록 교회공동체가 심각하게 전파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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