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뿌리깊은 유물론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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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뿌리깊은 유물론적 세계관
  • 윤영호
  • 승인 2006.08.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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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사관의 화련한 문을 열어젓힌 마르크스(우측)와 쿠바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좌측). 기독교인들까지 사로잡은 이들의 사상은 하나님의 섭리를 물질적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한다.

 

세상의 흐름 못 읽는 말 뿐인 기독교역사

최근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정세가 심상찮다. 안으로는 무역관세 재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논의와 더불어 북한과 갈등격화라는 안보문제 그리고 노사대결 구도 및 좌우이념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내부는 최근의 수해문제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카오스’상황이다. 여기에 정부여당의 지자체 선거 참패로 인한 정치균열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어 이 혼란상황이 수습될 상황은 당분간 멀기만 하다. 우리나라 밖으로는 북한 미사일 실험을 기회로 유엔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되는가 하면 북한을 빼놓은 ‘5자회담’강행이 논의되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의 의견은 묵살되는 등 21세기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어둡기만 하다. 가까운 미래에서 오늘의 사건들은 분명히 ‘역사’로 기록될 것이지만, 우리 기독교 역사학계에서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이 현실의 역사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


‘역사’의 영어 ‘History’는 ‘His’와 ‘Story’를 합한 말로, ‘그에 관한 이야기’라고들 한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곧 역사라는 말이다. 이는 우리 인간사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교훈을 주는 해석이다. 여하튼 역사는 바로 지금 우리 인간들의 삶의 좌표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어느 방향을 향해 가야할지를 안내하는 표시판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과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쳐온 인근 국가들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한 각계의 해석과 분석들이 앞다퉈 쏟아지고 있다. 이것들이 옳든 그르든 분단국가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과 함께 전쟁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주변의 국가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고자 하는 정치적 술수가 짙어진다는 매우 어두운 분석들이 대부분이다. 주요 언론들로부터 쏟아지는 이같은 진단들은 우리 국민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위세당당한 유물론적 세상보기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각계로부터 쏟아지고 있는 여러 평론들의 기초인식이 사회과학적 관점이 대다수란 사실이다. 국제정치학, 경제학, 외교학 등 국제정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것이 왜 문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과학이란 학문이 기초하고 있는 토양이 ‘유물론’(唯物論)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물질계의 운동법칙을 다룬 학문이어서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념문제도 있어 배타적인 인식이 강하지만, 여기서 유물론에 기초한 사회과학적 국제정세 평가를 주목하는 것은 우리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 아래 세상이 움직여진다는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신앙공동체이기에 급류에 휘말린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유물론에 기초한 사회과학적 정세분석을 우려하는 것이다.

정세분석은 역사인식과 동일한 궤를 이룬다. 따라서 현대의 위기상황을 파악하는 사회과학적 분석은 거시적으로 유물론적 역사인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환경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 유물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경향은 매우 깊게 침투해 있으며, 이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인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와 역사를 조망하는 관점은 전통적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실증주의, 주관주의, 합리주의(역사주의)가 그것들이다.


실증주의-주관주의-합리주의 역사관의 본질들
19세기 역사학자 랑게에 의해 확립된 실증주의는 ‘진정 그것이 일어난 사실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조였다. 랑게는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다”고 말하며 역사란 확증된 사실의 집합이라고 했다. 역사가의 개인적 주관과 판단을 제거한 것이다. 객관만이 의미있는 것으로 간주된 것인데, 이에따라 발굴되지 않은 여러 사건들이 발굴되는 업적이 이루어졌다.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불리한 사실들이 의도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관행이 ‘사실존중’경향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다음으로는 크로체와 콜링우드에 의해 확립된 주관주의다. 20세기 초엽까지 나타난 주관주의는 역사가의 판단을 다시 존중하는 것으로, 역사 속의 사상과 철학을 꽃피운 사조였다. 하지만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가 없는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중엽의 합리주의. 역사가 E.H.카에 의해 확립된 이 사조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로 상징된다. 즉, 과거 일어난 사실과 그것을 판단하는 역사가의 계속되는 교호작용에 의해 의미가 주어진다는 것이 합리주의의 내용이다. 사실을 선택하는 역사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미 일어난 사실 자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역시 역사가에 의해 역사기록이 바꿔질 수 있다는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21세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며 지난날의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경향이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존중했던 모더니즘은 그마나 객관진리에 대한 탐구가 진행됐지만, 이를 극복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진리보다는 개인 개인의 입장(사회공동체 개체)을 존중함으로써 객관진리 탐구 열의를 제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제 문제로 접어들어야겠다. 과거 나타난 역사해석의 사조들은 비중을 ‘사실자체→역사가 해석’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 두 요소를 절충하는 ‘사실±역사가 해석’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즉 압축하면, 절대진리를 향한 직선적 사관(史觀)은 없어지고 물질과 인간의 어정쩡한 교호작용이 되풀이 되는 것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사조들의 기초가 유물론 혹은 사회과학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종말론적 기독교 역사관 수립과 적용은 미흡
최근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예상대로 치열하다. 가장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가 이런 과도기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 어떻게 국익에 유리하게 주도할지 학자들은 침튀기며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은 E.H.카의 말대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진행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사실±역사가’란 공식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다양한 해석들을 한데 엮어서 훌륭한 대안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같은 방식으로 이 시대의 가장 풀기 힘든 문제를 풀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 시대를 풍미하는 국가는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가 짚어야 할 문제는 이 난국의 시대를 해석하고 평가하고 진단하는 대열에 ‘절대진리’를 지향하고 있다는 교회들이 도무지 끼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유물론적 사회과학의 거대한 입김 때문에 신본주의는 아예 종적을 감춰 버린듯하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생존방식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이 절대진리를 지켜내기까지 겪었던 암담하고 처절했던 역사를 보게된다. 이스라엘은 절대진리에 무관심한 징벌로 심판을 받았고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서야 진리를 체득하게 됐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절대진리를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우리 기독교가 정작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루는 학문의 영역에서 뒷걸음질을 한다면 교회는 그저 한낱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역사를 보는 눈은 매우 중요하다. 이 눈은 하나님을 전제한 의식(意識)을 갖게 하기도 하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 세상이 위기를 맞을 때일수록 교회는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이란 존재를 알리는데 열심을 내야 한다. 절대자의 존재를 무시한 그 어떤 문제해결도 결국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한다는 것이 지난 역사의 교훈인 동시에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여전히 교회건축을 준비하느라 재정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새로 부임한 목사님의 차량교체를 걱정하는 등 비본질적인 문제로 소비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이다. 성경의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하고 현재의 각종 위기상황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대안을 만들어내는 기독교 역사연구가 배출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기독교세계관을 훈련하는 교육시스템 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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