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교회와 세상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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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교회와 세상잣대
  • 윤영호
  • 승인 2006.08.1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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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관으로 신뢰받아야 복음능력 강해지나
▲ 세상 속의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 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한다면 초월성은 상실할 것이란 지적이다. 성령강림을 체험하는 초대교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사법부의 판례가 교회갈등을 해소의 열쇠인가

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한국교회는 개혁드라이브의 거센 풍랑에 따라 자기정체성을 재고하는 가운데 새 옷을 입으며 이제는 개혁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교회가 추진한 개혁슬로건은 의외로 단순했다. “세상이 변하니 이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복음전도는 이렇게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며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줌으로써 사회의 신뢰받는 기관으로 자리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식의 생각이 개혁의 이유였던 것이다. 개혁은 복음전도를 위해서만 의미있다는 식의 생각이 퍼져있는 상황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구제와 나눔을 통해 정부가 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구석구석의 복지혜택을 주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지역당국이 필요로 하는 각종 자선행위에 기부함으로써 교회는 유형무형의 사업들을 충실히 감당해왔다.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을 사회공동체 안으로 다시 흡수하고자 하는 노력은 탁월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된 요즘, 한국교회는 사회의 기관으로서 기능만을 중시한 채 ‘영적 초월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뎌졌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물질을 나누고 교회에 집중된 공동체의 역량을 나누는 것이 교회의 영적 초월성을 왜 약하게 했을까.
 
영적인 초월성에 무뎌진 교회 `걱정`
우리는 교회 안에 팽배한 ‘합리성의 관행’에 주목하고자 한다. 좀 어려운 주제이지만, 꼭 짚어야 할 이유는 과거의 일들을 비합리적 관행으로 비판하면서 합리적 개혁으로 현재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부의 개혁의지가 386세대를 포함한 신(新)기성세대의 지지를 힘입어 최근 갑자기 거세게 분출되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현장 경험이 없는 정치관료들의 판에 박힌 정치스타일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풍부한 현장(삶)경험’을 가진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대대로 세습받아 국민들의 삶의 애환을 ‘정서적’으로 알지 못하는 직업정치인들로는 우리들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연 국민적 감정이었다. 이것은 이성(理性)의 문제가 아니었고 합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막연한 권위에 눌린 국민들의 감정이 선거라는 국가제도를 통해서 나타난 것뿐이었다. 이 때 국민들이 내건 주된 슬로건은 ‘개혁’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정치권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적지않기 때문인데, 교회가 직면한 개혁이 어쩌면 정치계의 개혁드라이브에 맞물려 종말론적 초월성을 상실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심판)와 하나님의 사랑(구속)을 동시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보았는데 문제는 교회가 사회의 건전한 기관으로 자리잡아야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합리성의 관행’이 여전히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교회가 다른 사회구제 기관이 있음에도 여전히 구제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세상의 가치관에 대항하여 그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선언적 의미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특수집단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받은 갖가지 상처들을 더 이상 치료받지 못한 실패한 인생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이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역사상 물질적인 탐욕이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세상의 이기심에 대항하면서 한편으로는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치관을 넓혀나가는 ‘영적 초월성’ 혹은 ‘영적 당파성’(黨派性)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초월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나눔과 구제가 탐욕과 욕심이 팽배한 세계와 대항하고자 하는 것인데도 교회 내부에서 조차 이것을 복음전도의 수단으로 본다면 교회는 복음전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세상의 갖가지 변화를 수용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한 교회에 대해서는 ‘시대에 뒤쳐진 교회’라며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교회의 봉사구제는 이기적인 가치관과 싸우는 것
우리는 70~80년대 영적 갈증을 못이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온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첨단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가운데 세상의 인력 경영관리 기법과 재무관리 기법을 적용하며 ‘목회경영’이라는 신조어를 창출했으며 나누어야 할 재물을 ‘관리’하는데 열심을 내면서 영적 초월성은 희생시켰다. 2000년대를 맞은 오늘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몇몇 교회들이 내건 개혁슬로건 역시 21세기에 걸맞는 목회상 구현을 목표로 확고한 제도관리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온 합리성의 관행은 최근 추진되는 개혁에서 가장 큰 빛을 나타내고 있다. 목회자의 리더십이 기업총수의 리더십에 비교되어 교회의 세속화를 유도하더니 이제는 목회자도 직업인이어서 세금을 내야하고 교회에서 사역하는 부교역자나 교회직원들은 근로자로서 대우받아야 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이라고 엄청난 변화를 몰고 있다.

또한 교회갈등을 놓고 이루어지는 사법부의 판례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교회재산 분할이 투명해질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이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 우리나라 굴지의 조세당국 및 감찰기관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일반기업의 재정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법부의 판례가 교회분쟁을 막아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얼마나 섣부른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법부의 판례를 악용하는 교묘한 교회분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은 과연 비관적이기만 한 것일까 반문할 일이다.

교회의 기관화는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세상에 뿌리내리는 교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결국 세속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같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속사정은 앞에서 본 것처럼 그동안 추진됐던 개혁드라이브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 속에서 교회의 위치 혹은 복음전도를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관리에만 집중하다가 세상방법이 가득한 개혁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교회의 기관화가 진행된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신앙선조들의 영적 관행을 따르기보다는, 앞으로 교회존립을 위해 순간의 세상타협을 용인한 교회의 현실순응적 자세가 합리성의 관행을 초래했다고 보여진다.

개혁이 ‘세상의 기관’과 ‘교회’에서 확연히 구별돼야할 점은 교회개혁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다. 개혁을 진행하시는 분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문제 때문에 더 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역사가 보여준 교훈이다.
 
세상의 잣대와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개혁운동 `유감`
한국교회를 보면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때는 예수님 재림과 함께 올 것이라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매우 불결했을 것이다. 각종 짐승들이 제대로 된 위생시설 없이 방치됐을 것이며 냄새와 울부짖는 소리 때문에 여기에 들어간 8명의 노아가족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방주 밖의 홍수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을 환경이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불결하고 더러운 냄새가 여전할 것이다. 가끔은 갈등도 있을 수 있고, 고요한 가운데 기도조차 제대로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방주가 그랬듯이 교회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회를 세상의 기관과 구별하는 이유는 그것이 합리적인 경영방법으로 세상의 기관보다 모범적인 경영모델을 창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고 그의 사랑 때문에 힘을 얻기 때문이다.

교회의 불결한 환경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빛나게 한다. 건강한 교회를 만든다는 우리들의 노력은 반하나님적인 세상의 가치관과 싸우면서 진행돼야 하는데 요즘 우리 곁에서 나타나는 교회개혁은 사법부의 판례와 세속적 리더십 이론, 이익을 남기도록 구성된 상업적 경영이론 등 합리성을 잣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성에 대한 극진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교회의 세속화는 더욱 공고하게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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