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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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는 하나님
  • 승인 2001.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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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문율이다. 오랜 전통과 경험과 관습 속에서 형성된 불문율은 성문법 보다 더 강한 규제력을 가지고 사회를 안정시키고 지도층에 보이지 않는 권위를 부여한다. 영국 사회는 불문율에 많은 것을 의존하면서 신사의 나라라는 이름을 지켜나가고 있다.

욥은 욥기 26장에서부터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은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욥26: 9∼10), 수면에 경계를 긋는다 함은 구체적으로는 수평선을 가리키고, 넓게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강을 국경으로 하고 있는 두 나라는 대개의 경우 강 흐름의 중앙을 국경선으로 삼고 있다. 철책이 없는 국경선이지만 국경수비대나 강을 운항하는 배의 선장들은 철책이 세워진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경계를 지킨다. 영해와 공해를 구분하는 선도 보이지 않지만 엄격하다. 민주사회는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양화된 각 분야가 수면에 그어진 경계와 같은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며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키며 조화를 이루고 그 다양성은 힘을 가지며 획일화된 사회에 대한 우월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근래 한국사회는 이것이 참담하게 깨져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양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쪽도 있을 수 있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기존의 태도를 견지하는 쪽도 있을 수 있다. 양쪽은 피차, 또는 공통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번 평양방문단 가운데 일부가 이 선을 한참 넘어 일으킨 돌출행동은 우리 사회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많은 매스컴이 현재 우리 사회의 양상을 해방직후에 있었던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상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온 것이 무엇이었던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서도 개신교는 다양성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하나님이 수면에 그으시는, 보이지 않으나 엄존하는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교파간에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며 상호존중하는 것이 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지키는 것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 선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담을 세우는 대신에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는 하나님의 특성과 의도를 얼마나 잘 받들고 있는가? 보혁간의 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위성방송 채널 같은 특정사안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보이지 않는 경계를 존중해야 할 또 하나의 분야는 사이버의 세계이다. 사이버의 세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익명성이 그 강점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비 콕스가 1960년대에 ‘세속도시’에서 익명성에 대해서 말했을 때 이같이 익명성 극대화의 양상이 빚어지리라고는 그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수록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면서 동시에 욕설의 바다가 되어 버렸고 사이버 범죄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폭력과 절도에 이어 3대 범죄의 하나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인터넷이 교회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 밖에서 인터넷을 이용해서 교회를 공격하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인데 교회 안에서 인터넷을 무기로 삼아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하나님은 수면에 그으시는 경계를 넘어설 때 무섭게 진노하시는 분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들은 추방과 각종 고통을 겪게 되었고 생명나무의 길에는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이라는 보이는 경계선이 생기게 되었다. 최근 생명공학이 이 선을 넘나드는 곡예를 하고 있어 보는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많은 속성 가운데 하나인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 보이지 않으나 더 강한 힘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이 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 선을 존중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을 극복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관지(목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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