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비평 - 기독교와 성적 독백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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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비평 - 기독교와 성적 독백행위
  • 승인 2001.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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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문제 가운데서 자위행위(masturbation)는 종종 교회 내에서 금기시 되는 주제가 되어왔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자기를 학대하는 사악한 행위로 비난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특별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책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오늘날 여러 통계는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죄책감이나 불완전한 느낌을 갖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자위행위 역시 도덕적 목회적 생각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위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경이 자위행위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카톨릭은 오난의 이름을 따라 자위행위를 오나니즘(onanism)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근거 구절로 삼지만, 그 본문(창38:4-10)은 자위행위보다는 중절 성교를 통해 형사취수제도가 명한 가족의 의무를 거부한 죄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구절들이 인용되기도 하지만, 많은 주석학자들은 그것들을 자위행위의 도덕성 여부를 논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경에 기초한 일반적 원리를 따라 이 문제를 판단하고 적용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위행위를 통과 의례적인 성적 발산행위로써 경험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사춘기에 몽정을 통해 오르가즘을 경험하고 19세를 전후해 성충동이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생식선이 만든 정액세포가 부고환을 거쳐 정관을 통해 정낭에서 충만케 되면서 배설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생리적 성장과 달리 책임 있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만한 사회적인 성숙이 늦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행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자위행위는 정상적인 이성애적 삶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생식구조와 성구조가 분리되어 있어 배설의 필요성이 없고, 성적 자각이 28세를 전후하여 절정에 이르며, 대부분의 미혼 여성은 남성만큼 강한 성 충동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적용이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혼자들의 경우, 자위행위는 성관계의 권리를 가진 배우자와 사랑에서 우러나는 성관계를 갖는 대신 자기 스스로 성 쾌락을 부여하는 행위이므로, 성적 동반자 관계가 의미하는 결혼의 본질을 해치는 성적 독백행위가 된다. 따라서 기혼자의 자위행위는 인격적 성교를 통해 친밀성을 만들어 가는 의무의 회피이며 도피행위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간음의 위험은 피하면서 정절의 도전은 거절하는 값싼 부정(不貞)행위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기혼자일지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계의 대체물로서 기여하는 경우, 성관계가 불가능한 배우자를 가진 경우, 여러 이유로 장기간 별거중인 부부의 경우에는 습관적 도피행위가 아닌 한, 자위행위가 안전 밸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위행위는 난해하고 복잡한 현상이다. 그것은 증오할만한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행동도 아니다. 많은 경우 자위행위는 불결한 공상과 욕망이 동반되며, 공허함과 죄의식이 뒤따르기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딤후 2:22)대로 최초의 정욕행위가 될 수 있는 자위행위를 피할 수 있으면 제일 이상적이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자위행위가 습관적으로 계속될 경우 인격 성장과 통합에 심각한 방해가 될 수 있고, 성적 도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적 충동을 보다 고차원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훈련과 주변적 배려가 필요하다. 밝은 환경에서 밝은 생각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습관을 갖게 하고, 기도, 공부, 운동, 취미활동 등을 통해 음산한 혼자만의 시간이 없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강인한(천안대 기독교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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