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세기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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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세기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자연주의
  • 윤영호
  • 승인 2006.04.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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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성 부정하며 감각현실만 숭배 조장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이름인 ‘자연주의’(自然主義)는 알고 보면 엄청난 뜻을 담고 있다. 서양에서는 자연주의를 태동시킨 이론으로 ‘가이아이론’이 손에 꼽힌다. 1978년 영국의 과학자인 J.러브록이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한 데서 비롯된 개념이다. 요점만 말하면,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로서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다. 즉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물체로 보는 것으로, 지구가 스스로 조절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보는 이론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손색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 이론은 현대사회의 치명적인 문제인 ‘환경재앙’ 때문에 매우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널리 유포되는 중이다. / 편집자 주


서양의 가이아이론은, 인도의 범아일여사상(梵我一如思想)과 중국의 주역사상 및 노장의 철학으로 압축되는 동양의 사상흐름보다 훨씬 뒤늦게 형성된 개념이다.

 
이미 동양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보는 유기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이아이론이나 동양의 유기체적 세계관은 “만물은 모두 연관돼 있다”는 상관적 관점을 가진 것들이다.

깊이 생각하든 얼핏 생각하든 매력적인 이론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과학문명이 하늘을 찌르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현대사회에서 그 치명적인 대가로서 자연훼손과 오염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돼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환경, 생태계 파괴 대처용 인기

자연주의는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적 생물체로 바라보는 가이아이론과 유기적 세계관(‘기계적세계관’과는 반대 개념이다)의 틀 안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은 자연훼손과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의 참혹한 상황에 힘입어 현대사회에서 번성하는 중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치관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환경을 잘 가꾸어 모두가 안락한 삶을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말이다.

한 가지 사례만 밝히면 이렇다.

가이아이론과 동양의 사상에 따르면, 자연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동과 생각은 그 자체로서 인류의 파멸을 재촉하는 범죄행위로 규정되어 지구라는 전체를 위해서는 범죄한 인간쯤은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지지하게 만든다.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경우, 의학계에서 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경악한다. 인간은 자신의 평안한 삶을 위해 쥐를 각종 화학약품에 희생시키기까지 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인 것이다.

1990년 ‘리더스 다이제스트’ 6월호에 ‘의학계와 전쟁하는 동물들의 권리’라는 글이 소개돼 있다. 글을 쓴 사람은 ‘동물의 윤리적 처우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잉그리드 뉴커크 회장이다.

그는 여기에서 심각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쥐나 돼지나 개나 남자 아이나 다 똑같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다른 유기체와도 동등한 자격을 갖춘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물개보호자들이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인 낙태행위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이라든지 동물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동물학대에 항의하기 위해 식품에 극약을 집어넣는 행위라든지 혹은 미국의 경우 올빼미를 보호하기 위해 북서부지방에 지뢰를 장치하는 것들은 모두가 유기체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자연주의의 냉혹성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동물과 인간을 같은 존재로 인식

여기서 우리는 자연주의가 왜 기독교와 맞지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선 자연주의가 상대주의의 한 측면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상대주의는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상치되고 또 그러기 때문에 모든 실체들을 비교하며 평가한다.


인간이란 다른 동식물과 비교되는 상대적 산물이어서 서로를 유익하게 할 때는 존중받을 수 있지만 만약 해악을 끼친다면 가차 없이 형벌을 가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살인죄를 범한 가인을 그대로 살려준 하나님의 결정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외국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환경보호단체의 용감함을 보고 경탄하곤 한다. 유럽이나 미주 등지에서 사람들의 보호 속에 안전하게 사는 애완용 동물들을 보며 ‘수준 높은 시민의 나라’로 추켜세우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 숨겨진 함정은 인간=동물이라는 등식관념이다.

세계적인 뉴스전문 채널 CNN의 창립자인 테드 터너도 자연주의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성경의 십계명은 자발적인 10개조 발의안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가운데는 지구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 국제연합의 지지, 환경에 지나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두 자녀만 출산하기가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교회가 진행하는 환경운동에도 이같은 요소가 충분히 침투할 가능성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환경에 둔감한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도록 지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자연을 짓밟는 일은 충분히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처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독교입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를 숭배의 대상으로”

자연주의는 환경문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미스테리한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서도 강력하게 나타난다.


지난 3월29일 우리는 각종 매체에서 들썩였던 한 가지 일을 기억한다. 개기일식 현상이 그것인데 이것은 태양의 주변을 일정하게 공전하는 지구와 또 지구를 공전하는 달이 ‘태양-달-지구’순서로 배열되어 태양이 일정한 시간 동안 가려지는 현상이다.

자전과 공전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인간의 믿음은 월식과 일식에 대한 경외심을 낳았고, 더 나아가 우주 행성들의 ‘조화로운 배치’를 이루며 지나가는 그 위대한 순간을 경건하게 맞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모여들곤 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 대신 자연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만끽한 사례들이다.

우리는 자연주의가 가진 속성, 즉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추종하는 경향에 주목해야 한다. 자연주의는 초자연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자연주의가 세속적 인본주의의 한 연장선에서 진행된 사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21세기에 들어와서 ‘부활절’ 보다는 ‘지구의 날’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자연스런 배치와 배열을 신기한 듯이 느끼는 사람들은 이제 자연을 신비스런 것으로 숭배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자연을 예배하기까지 한다. 범신론에 이어 뉴 에이지 의식(儀式)이라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주의는 상대적이면서 감각적인 것을 추구한다.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잣대 속에서 평가를 받으며 자연의 한 범주 가운데 속해 ‘다스려져야 할 대상’으로 전락되는 비극을 당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인간의 청지기직분을 강조하지만, 자연주의는 우주 스스로가 조절능력을 갖춘 유기체이므로 인간은 단지 그 유기체적 시스템의 통제를 받으면 그 뿐인 것이다. 인간구원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 외에 그 무엇도 무의미 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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