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8주특집](하)세상을 따라가는 교회;맥도날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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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8주특집](하)세상을 따라가는 교회;맥도날드교회
  • 윤영호
  • 승인 2006.02.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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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설 자리 잃은 시스템식 목회

미국을 ‘맥도날드 사회’라고 꼬집어던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조지 리처박사는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상품생산 및 관리시스템 그리고 언제든지 가능한 계량화(측량화)를 현대 미국사회 문화를 지배하는 핵심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복잡한 상품유통 구조와 관리 시스템을 아주 단순화시킨 경영모델로 바꾼 것이 맥도날드 햄버거 회사의 경영기법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인 기호에 맞춘 능률과 효율경영

햄버거 회사인 맥도날드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 안에서나 통용될 것 같은 공정과정을 유통과정에 까지 도입, 이른바 패스트푸드(fast-food)의 강점인 단순하고 빠른 속도전에서 성공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는 빠른 성장을 거듭하며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의 모델기업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리처박사가 주목한 부분은, 미국사회의 변화가 단순해질 뿐만 아니라 계량화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회현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맥도날드 회사가 그같은 변화를 주도했다기보다 미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변화추세를 매우 예민하게 바라보며 사람에게 경영을 맞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맥도날드는 단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을 경영에 도입한 것뿐이다.

현대인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에 애착을 갖는 것은 복잡한 사실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단순명료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능 때문이다. 맥도날드는 바로 현대인의 단순함 혹은 편리함의 속성을 기업경영에 도입하는데 탁월한 안목을 보여준 것이었다. 현대인의 기호에 맞춘 새로운 방식의 경영기법을 창안해 낸 것이다.


계획된 통제와 예측 가능한 경영

예측과 계량화 그리고 통제. 이것은 맥도날드식 경영의 핵심요소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예측과 계량화 그리고 통제가 유발시키는 왜곡현상이 그것이다. 맥도날드 시스템은 햄버거 외에 이것을 다루는 사람까지 통제를 가한다. 인간의 가치도 편의성과 효율성에 따라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예측가능한 행위만을 유의미한 것으로 인정할 뿐 일체의 다른 행위는 ‘이탈’로 치부하기 일쑤다.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맥도날드는 치열한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단 성공했다. 따라서 세계 어디를 가나 맥도날드 햄버거는 똑같은 경영방식을 고수한다. 포장지와 로고, 음료컵, 빵의 모양 심지어 네프킨과 스트로까지 모두 동일하다. 성공경영 모델은 세계 어디를 가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경영주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증거이다.

맥도날드의 경영방식은 ▲편리성과 효율성을 숭상하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성공한 경영모델의 세계화를 주창하며 선진미국 땅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전 국가에 뿌리내리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 시점에서 맥도날드의 효율경영 방식에 주목해야 하는가.


맥도날드에 젖어드는 한국교회

한국교회들이 세상의 이같은 성공모델을 앞다퉈 목회부흥의 도약대로 삼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70년대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이라는 세계적인 결과를 일구어 냈을 뿐만 아니라 ‘성장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는 사실까지 함께 체득했다.


개인의 학식과 가정의 물질적 풍요로움은 물론 기업성장과 국가발전이 똑같은 기준에 의해 재단(裁斷)되었던 것이다. 이 범주 안에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포함된 것인데 빌리그래함 대집회 등 일련의 기독교 행사가 ‘대형화’를 추구했던 것은 바로 당시 국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대목이다. 

성장이 곧 미덕이라는 가치관은 교회 안에서는 복음전도=성장이라는 도식을 낳았으며 민족복음화 운동을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교회성장을 체험한 세대들은 30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이제 맥도날드 경영방식을 채택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맥도날드 기독교, 이른바 맥처치 현상일까.

우리는 최근 수년 동안 모든 한국교회를 ‘닮은 꼴’로 만들고 있는 한 가지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교회나 경기도의 교회나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어디를 가나 한국교회는 이제 닮은 꼴 교회로 성형되고 있다. 지역 색깔은 남아 있지만 앞으로 얼마 못되어 사라질 것이다.

성장에 방해가 된다면 말이다. 목회자의 철학은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 속에서 성장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성장한 교회는 주차장과 커피숍, 서점 등을 갖추어 등록교인의 편의를 존중하는데 일사불란하다.

하지만 교회를 닮은꼴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교회를 가나 ‘똑같은 신앙관리 프로그램을 운용’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클리닉을 받는 피부처럼, 우리는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설정된 프로그램을 따라 신앙을 케어 받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6주 동안 교육을 받으면 새로 등록한 교회의 생활을 알게된다. 새신자부가 안내하는 각종 편의제공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시작되는 양육과정은 6개월 혹은 1년 동안 기간을 거치며 교회의 중요한 헌신자로 변화하게 된다. 단지 6개월 아니면 1년이면 되는 것이다. 더 높은 차원의 헌신을 하기 원하면 1년~2년 과정으로 준비된 제자화훈련을 거치면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일주일간 합숙하며 스파르타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전도폭발훈련’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등록을 마친 다음 3년에서 4년 사이이면 훌륭한 주님의 헌신자로 거듭나게 되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신앙관리 프로그램은 개인에게는 헌신자로 거듭나게 해 주고, 교회는 성장의 영광을 안겨주는 예가 된다. 목회지원 연구소들은 실제로 성장을 보여준 일부 교회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모델교회를 주목하라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들은 안정목회 상태에서 성장하는 교회로 거듭나려면 신앙관리 시스템에 이상은 없는지 목회기관의 배치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각종 교인양육 과정의 중간지도자(평신도지도자)에 대한 관리감독은 철저한지에 대해 자가진단할 것을 주문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시스템을 세우기에 바빴고 그것을 유지하느라 열과 성을 다했다. 한국교회는 지금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변질의 벼랑 위에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듯 하다. 목표는 ‘성장’이며 ‘안정’이지 ‘복음이 만나는 현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순결한 영으로 나아가는 거룩함이 시스템에 의해  실현가능한지 조차 되묻지 않는다는 비극이 숨어 있는 것이다.


관리시스템에 의해 조작되는 목회현실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물리적인 억압과 자유박탈이라는 위협을 수단으로 통치하는 세속정권과 차별되는 새로운 공동체이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의 창조물이며 그 가운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죄가 관영한 세상’에 선포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인 것이다.


세속권력의 통치권이 지배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인정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 백성은 통치자를 하나님으로 모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그의 자녀인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만이 생명력을 보장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확고한 믿음으로 지켜내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이같은 목적이 상쇄된 채 성장이 큰 가치의 목적이 되고 말았다. 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교회성장이 목적이 됐는가 말이다.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박사나 보수기독교인인 찰스 콜슨 박사는 이같은 교회의 왜곡을 “세상의 자본주의와 영합한 교회의 위기상태”로 진단하고 있다. 세상의 가치를 일순간 뒤집은 교회의 가치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세상의 가치를 답습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종교사상으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역할까지 했다고 우려한다.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단지 성장시스템을 조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조작된 시스템에 걸맞는 리더십만을 개발하거나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성장에 필요한 것은 우리 죄인들의 얄팍한 이성(理性)이지 영광을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개입은 사실상 불필요하다.

완벽한 교회성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실제 성공적으로 접목한 모델교회들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또 무엇에 필요한지 이제 우리는 반성적으로 그 질문에 대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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