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8주년 특집] “교회의 성숙을 말하는 신문(信聞)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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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8주년 특집] “교회의 성숙을 말하는 신문(信聞) 되라”
  • 공종은
  • 승인 2006.01.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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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언론, 무엇을 말해야 하나?



2006년. 기독교 언론 1백년(1897년 2월 2일 ‘죠션크리스도인회보’ 창간 기점)이 훌쩍 지난 지금, 신문·방송을 포함한 기독교 언론이 70여 개다. 가히 ‘언론 홍수 시대’라고 할 만큼 교계 언론은 특수(特需)를 누리는 상황이다. 특수는 이른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요’를 말하지만 교계 언론의 경우 특수 상황이 아닌데도 우려할 정도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말하기 좋아하는 한국 교회와 교인들을 언론이 그대로 쏙 빼닮았다”고 꼬집기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귀는 없고 입만 있다는 뼈아픈 말. 하지만 교회가 사회를 향해 얼마나 할 말이 많았으면 이럴까 하는 생각에 착잡하다.

섬김과 나눔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하면서 백년이 넘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공중파 방송들이 심심할 때마다 한번씩 터뜨리는 짜릿한 폭로성 기사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는 상황이라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막강한 언론의 필요성은 그만큼 절실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계 언론의 상황은 ‘중구난방(衆口難防)’. 70여 개에 달하는 언론들이 제목소리 내기에 바쁘고, 이해(利害)에 따라 논조가 하루아침에 뒤바뀐다. 정작 필요한 물을 홍수 속에서는 구할 수 없듯이, 할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크다 보니 모두가 교회의 말에는 귀를 막아버렸다.   

그러면 한국 교회는 언론이 뭘 말해 주기를 바랄까. “우리 교회가 사회를 위해 이만큼 일을 했다. 내가 이만큼 일을 했다”는 것. 결국 ‘자랑’이다. 정말 한국 교회가 자랑할 것이 많은 걸까.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언론이 나서서 자랑해주고 싶은 교회와 교인들은 정작 꼭꼭 숨어버린다.   

이런저런 바람들의 결국은 ‘성장이냐 성숙이냐’로 귀결된다. 교회의 성장에 초점을 두면 모든 것을 덮어야 하고, 성숙을 위해서라면 ‘뼈아픈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여론과 교회의 움직임은 ‘성숙’. “그동안 교계 언론이 충분할 만큼 홍보에 주력했다”는 것이 성숙을 말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김명수 씨(일산 광성교회)는 “교회의 성장을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성숙을 말하는 시대다. 요즘 교회들이 성숙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들은 대단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기독교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성숙을 위한 채찍을 들어야 한다. 언론이 교회의 성숙을 위해 무얼 했는지 돌아보라. 기독 언론은 해바라기였다”고 지적, 교회와 언론의 성숙을 위한 대안 제시와 행동을 주문했다.

성숙을 위해서는 아픈 부분도 건드려야 한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각종 비리와 전횡. 가장 민감한 부분이면서 기독 언론들의 입장이 확연히 구분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목회자와 교회의 비리와 관련한 부분을 다룰 때 교계 언론의 부풀리기와 과대 포장이 상당하다. 이미 다 아는 뻔한 사실을 부풀리고 포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의도적 물타기를 통해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많다. 신문(新聞)이 아니라 신문(信聞)이 됐으면 한다. 성도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내용을 담아달라. 기독 언론이 비리 목사들의 홍위병인 듯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는가”(박충진 목사. 평진교회)라는 지적과 당부가 아니더라도, 언론의 의도적 편들기는 일찍부터 지적돼 온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교인들 또한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다. 언론이 덮는다고 이해하고, 덮지 않는다고 실망해 교회를 떠날 정도의 미숙한 신앙인들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한국 교회를 살린다”(김동욱 목사. 삼진교회)는 충고도 상당하다. 

교회와 언론 모두 1백 년을 넘어섰다. 여리고 섬세하게 사회와 교회를 살피고 치료해야 하지만, 말해야 할 때가 오면 다윗의 심장으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독 언론의 현주소>

온·오프라인 병행 체제 돌입

1인 신문·기사 베끼기 위험 수위

이제 기독 언론은 교단지와 초교파지로 구분되던 이원 구도에서 ‘온라인 신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온라인 신문은 뉴스앤조이를 필두로 본지가 지난해 1월 1일, 온라인 신문 ‘아이굿뉴스’를 창간하자 5~6개의 교계 언론이 뒤를 이으면서 본격적인 온라인 신문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로 인해 온·오프라인 체제를 갖춘 기독 언론들이 속속 등장했다.

‘1인 신문’ 또한 기독 언론을 차지하는 한 부분. 기자 한 명이 발행인에서부터 기사 취재·편집·광고까지 전 분야를 담당하는 형태다. 이런 신문들의 경우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상당하고, 심할 경우 광고가 차야 발행이 되거나 신학교 모집 기간이나 각 교단들의 총회를 전후로 한 특정 기간에 집중돼 발행되는 신문도 부지기수다.

인터넷 신문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병폐 중 하나가 ‘기사 베끼기’. 신문이 온라인화 되면서 기사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자 취재 인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부 신문들이 기사 교류에 대한 사전 협약이나 양해도 없이 타 언론사 온라인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무분별하게 전재,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기자 한 명 없이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10여 면에 이르는 지면을 양질(?)의 기사로 채워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 온라인 기사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전재하거나 사진 또한 그대로 게재하는 경우가 많아 베끼기의 도를 넘어 기자로서의 양심과 도덕심마저 의심하게 하는 수위에까지 도달했다.

가히 기독 언론도 경쟁의 시대다. 그러나 도덕성을 넘어서는 경쟁과 견제는 오히려 언론의 퇴보만 부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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