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만나면 두부처럼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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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나면 두부처럼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현승미
  • 승인 2006.01.18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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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명 믿음의 길로 이끈 두부 전도왕 반봉혁장로

“두부가 몰랑몰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두부처럼 부드럽게 사시길 바랍니다. 두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유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 길에 나서서 갑작스레 두부예찬론을 펴는 반봉혁장로(왕지감리교회․조대성목사). 그는 ‘두부’로 전도하며 믿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고 있어 두부 전도왕이란 별명을 갖게 됐다.


“세상에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두부를 먹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하는 것처럼 두부의 원료인 콩을 만들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죄악에서 떠날 수 있으며 유익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 한 후 벌써 22년째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반 장로와 두부의 인연 역시 믿지 않는 이들을 전도하던 중에 맺어졌다.


“3년 전 이맘때쯤이었어요. 동네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됐지요. 근데, 제 말씀에 은혜를 받은 그 분이 전남 광양에 있는 두부공장으로 저를 이끌었지요.”


뜨거운 목욕탕 물처럼 지옥 역시 뜨겁다. 게다가 그곳에 한번 들어가면 돈이나 어떤 금은보화로도 다시는 나올 수 없다. 그런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야 한다. 이러한 반 장로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가 바로 두부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그 두부공장을 구석구석 견학시켜준 지양호 사장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며 400모의 두부를 선뜻 내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교인들과 나눠먹으라며 10~20모 정도나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400모, 그것도 정기적으로 두부를 지원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그 분 뒤에 서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온 저에게 두부로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계셨지요.”


그렇게 인연이 돼 지금도 매주 토요일만 되면 반봉혁장로가 있는 순천까지 200모 정도의 뜨끈뜨끈한 두부가 배달되고, 다시 어려운 이웃들에게 한 모 한 모 따뜻한 사랑으로 전달되고 있다.


“사실 제가 교회에 나가게 된 것도 음식과 인연이 있지요. 그러니까 46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성탄절 전날 교문 앞에서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시루떡을 줄테니 교회에 나오라며 전도를 하고 있었지요. 식탐이 많았던 저는 성경이 뭔지, 믿음이 뭔지 잘 몰랐지만 그 시루떡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예수를 진짜 구주로 영접한 건 22년 전이었어요.”


그저 성경책을 들고 다니고 주일성수를 지키며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던 그는 우연히 전남 광양의 광영장로교회 철야집회에 참석한 후 새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변모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한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진정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기회만 생기면 믿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며 전도의 길에 들어섰다.


이렇게 반봉혁 장로가 전도한 이들이 700여명. 그것도 평신도가 아니라 현재 장로, 목회자, 집사급 이상으로 시무하고 있는 이들을 헤아려 본 숫자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전도생활에도 꼭 지키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그의 전도 대상자는 불신자, 타종교인, 여호와의 증인, 다미선교회 등 이단에 빠지거나 교회에 다니다 시험에 들어 낙심한 이들이다.


“요즘은 실제 전도가 아니라 자신의 소속교회로 원래 기독교인들을 인도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전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하나 생기면 자신의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건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전도방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반 장로는 자신이 전도한 이들조차 소속교회로 인도하기보다는 근처 가까운 교회로 나가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전도방침은 교단을 초월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리교에 소속돼 있지만, 이단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면 그들이 사는 근처 교회로 인도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력장애 등 신체적 장애를 가진 목사님이 시무하는 8개의 어려운 장로교 교회를 직접 섬기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22년 동안 3개의 성전을 건축하고, 2개 교회의 개척을 도우며 700여명이 넘는 이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했다. 이러한 그의 전도열정은 아직도 교회가 없는 무교회 섬을 순회하면서 복음과 생필품들을 공급하는 한국 낙도복음선교회까지 미치고 있다. 그가 직접 기증한 배를 몰며 무교회 섬 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사실 반봉혁 장로의 고향인 순천은 손양원목사의 두 아들인 동식, 동인 형제가 순교한 곳으로 그 피가 살아서 역사하는 곳이다. 때문에 50%이상이 기독교인일 정도로 높은 신앙심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음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이 마을을 위한 그의 기도와 수고가 몇 년에 걸쳐 계속되기도 한다. 


“물론 저의 전도생활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욕도 많이 먹고, 맞기도 숱하게 맞았지요. 제가 가져간 두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이들도 있었지요. 그래도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결국 그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대표적인 마을이 순천시와 승주군의 경계지점에 있는 비래마을이다. 그곳은 산 사람의 마을 중심에 7개의 죽은 사람 묘가 있을 정도로 24가구 대부분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반봉혁 장로는 출석하는 교회 근처에 있는 비래마을을 위해 15년 전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직접 나가서 적극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의 오랜 노력과 기도가 드디어 18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나타냈다.


술집을 경영했던 부부에게는 중국 유학사업의 비전을 열어줘 67명의 중국 유학생을 전도하도록 이끌었다. 불교를 믿으며 반 장로를 업신여기던 할머니는 폐암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그를 ‘야수장이’라며 들고 있던 연장으로 내리치려까지 했던 비래마을의 이장 역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후 수술실직전에 그를 처음으로 ‘장로님’이라고 부르며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렇듯 자신의 전도사역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게 된다는 반 장로. 그의 사역이 복음의 불모지 구석구석에 심어져 세계로 뻗어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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