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돈없는 환자도 내겐 모두 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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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돈없는 환자도 내겐 모두 VIP”
  • 현승미
  • 승인 2005.12.15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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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의 시린마음 치료하는 이성복집사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소아과, 산부인과를 막론하고 누구나 학업을 마친 후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신앙적 양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대신해 사람의 신체를 다루고 있기에 그만큼 의사로서의 자질은 물론 신앙적 양심과 책임이 막중하다.


이러한 기독 의사로서의 삶을 조용히 실천에 옮기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 수원 ‘이성복 치과의원’의 대표 이성복집사(예수소망교회․담임:곽요셉목사).


그는 매주 수원과 해남, 두 곳의 치과병원을 오가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지인의 요청으로 보길도 옆 노화도에서 1년 동안 일주일에 이틀정도 근무했어요. 그때 해남사람 10명 정도 임플란트를 심어줬는데, 그걸 마무리 해주려다보니 해남에 치과병원을 개원하게 된 거죠.”


워낙 시골이라 제대로 된 치과병원은 커녕 치과 의사도 없었다. 그나마 다녀가는 초보 치과 의사들조차도 시골 섬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큰 도시로 금세 떠나곤 했다. 당연히 이곳에는 연세 많은 노인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체 기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섭리. 치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집사는 아직도 노모가 살고 있는 고향 땅 해남의 가족 같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급한대로 10여명에게 임플란트를 시술했다.


임플란트는 빠진 치아 부위를 대치하는 인공 치아다. 일반 보철물이나 틀니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치아와 뼈가 상하지만 임플란트는 주위의 치아 조직을 상하지 않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관리를 잘못하면 플러그나 치석 등이 생겨 주위 조직에 염증을 일으켜 치주질환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수술 뒤 완치까지 정도에 따라 3~6개월이 소요되며, 재료의 가격도 200-300만원을 호가한다.

결국 이것도 고스란히 이성복집사의 몫이 됐다. 시술가격이야 그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환자들의 치아가 완치될 때까지의 기간이 문제인 것이다. 해남의 UCLA치과는 이렇게 탄생됐다. 지난 7월 개원을 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 할 것을 다짐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해남에 내려가 토요일에 올라오고 있어요. 수원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상가 몇 개 건너 치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수원지역에 비하면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해남에 더 관심과 애정을 줄 수 밖에 없다. 교통도 편치 않아 수원에서 해남까지 자가용으로 3-4시간이 걸린다. 화요일 저녁이면 특히 밤길 운전에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다. 그러나 그는 두려울 게 없다.


“항상 차에 성경책을 휴대하고 다녀요. 저에게 든든한 하나님 백이 있는데 무섭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몸은 좀 피곤하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제가 가는 길에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요.”


지금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있는 그의 집안은 사실 대대로 불교집안이었다. 그러나 이 집사는 물론이요, 해남의 어머니까지 믿음의 자녀로 변화시킨 이는 그의 큰 형수였다.


“경찰관인 큰 형이 제일 먼저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적응을 못해서 많이 힘들었나봐요. 그 때 큰형수가 주변 사람의 권유로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나가더니, 큰형을 전도했어요. 형도 하나님을 영접한 후 사람 대하기가 많이 편해지고, 여유로워졌대요.”


사실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까지 큰형수의 전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선뜻 교회로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형제들도 전부 믿고, 주변에 신앙 생활하는 친구들 가정을 지켜보면 아이들도 바르고 무난한 삶을 살더군요. 형수 따라 교회도 여러 차례 다니고 종교를 가지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근데 자꾸 의심이 들고 세상적인 잣대로 보게 됐어요. 사람의 의지로 믿음을 갖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그런 그가 갑자기 자진해서 지금의 예수소망교회에 등록하게 된 것은 순전히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서였다고 고백했다. 물론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 가운데에서 성령의 감동하심과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울에 올라와서도 어려움을 많이 당했어요. 워낙 병원도 많고 잘 나가는 출신들도 많았으니 지방대 졸업장만으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죠. 그래서 집안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미국 UCLA에서 공부해 지금의 임플란트 전문가가 된 거죠.”



가족들의 기도로 부천에 힘들게 치과를 개원하게 된 이성복집사. 그 아들이 힘들게 벌어서 용돈을 드리면 아깝고 미안해 하시다가도 교회 건축헌금, 십일조 등 교회와 담임목사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어머니가 아들 이름으로 몇십만원씩 감사헌금을 하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가족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후 스스로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까지 어려울 땐 세상에 대한 원망도 많이 하고, 어느 정도 살게 됐을 땐 제 노력으로 이룩한 줄로만 알았어요. 자만심에 빠졌던 거죠. 하지만, 이제 부족한 저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것 같아요.”


치아 치료시에도 무조건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이성복집사.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VIP치료법을 사용하고 있다. VIP치료법이란 관례적으로 4-5번씩 행해지는 신경치료도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줄이기 위해 한, 두 번의 시술로 말끔히 치료하는 것. 


“지금도 시골 가난한 사람들은 치과치료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충치 하나 치료하는데 15만원씩 드니까 당장 병원에 가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최대한 활용해 그분들을 돕고 싶어요.”


해남뿐만 아니라 수원 지역에서도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시술하고 있는 이 집사는 여느 의사들처럼 물질적 부유함은 갖지 못했지만, 그 누보다도 풍요로움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서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노라고 맹세한 이성복집사. 예수님을 닮은 그의 따뜻한 사랑과 마음이 이 추운겨울 어려운 이웃들의 시린 마음과 치아까지 다 고침받을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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