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라
상태바
전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라
  • 운영자
  • 승인 2005.11.09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영설 목사<문래동교회>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영혼을 살리고자 자기 생명을 내 놓았다.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켰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의 특징이 그렇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죽음으로써, 잃음으로써 얻는 생명의 가치와 온전해짐은 기독교 진리에서만 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된 자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하는 열정과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고귀한 신앙의 유산 가운데 하나는 전도열정이 식어간다는 점이다. 많은 성도들이 “전도는 어렵다”, “전도해도 안 된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전도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행위는 웬지 거부감과 혐오감마저 느끼게 한다. 팻말을 들고 “예수 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다니는 사람들과 조용한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전도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필자는 그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하여 오히려 더 거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매우 염려한다. 어떤 사람들은 천 원짜리 지폐에 “예수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라고 붉은 글씨로 고무인을 찍어서 전도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보통 전도지를 줄때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지만, 지폐에 찍힌 것은 사람들이 버리지 않고 읽어본다는 것이다.

국가재산인 공용화폐를 훼손하는 일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전도를 기술이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래서 교인되게 하는 일이라면 방법에 개의치 않는다.

오직 교회부흥만을 위한 전도에 초점이 맞추다보니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해야 하지만 무례한 전도방법은 기독교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배척하는 원인이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지금 2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각종 방송과 신문,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한다.

이른바 모든 것이 열려진 개방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고학력을 갖추려는 지식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전도 프로그램을 시도하라는 메시지이다. 즉 전도를 위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압박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전도자로 “동일시” 원칙으로 관계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한 자이지만 종이 되었고,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되었고, 율법없는 자들에게는 율법없는 자처럼 되었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했다. 바울은 전도대상자라면 그가 누구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주장이나 신념,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공감하고 인정해주고, 함께 해주는 방법으로 들어주고 이해해주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은 복음을 위해서 행했던 일들이라고 했다.


오늘의 전도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은 복음의 사회적 실천이다. 복음을 실천하려면 ‘나눔과 섬김’의 영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의 모습, 그것이 이상적인 전도이다. 인간 소외현상이 심해져가는 현대사회가 갈망하는 것은 나눔과 섬김을 통한 감동을 맛보는 것이다.

나눔과 섬김 공동체에만 현대인들의 희망이 있다. 반면 성도 개인의 삶은 거룩한 인격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통해 믿음의 덕을 세워야 한다. 비 기독교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들과 같은 행동을 보여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교회다운 모습, 교인다운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자면 교회가 있는 지역사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지역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교회여야 하며, 주민들이 인정하고 신뢰하는 교회되어야 한다. 여기에 21세기 한국교회가 성장하느냐, 아니면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느냐 성패가 달려있다. 우리가 유념해야할 것은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