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에게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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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에게 관심을
  • 승인 2001.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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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밥이 되더라도 자유를 찾아가는 길에선 목숨이 아깝지 않다.”

이는 탈북자 장길수 군 일기의 한 대목이다. 길수 가족은 97년부터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후 4년여의 피 말리는 도피 생활 끝에 꿈에도 그리던 남한의 품에 안겼다. 제3국에 체류하고 있는 어느 탈북자는 99년 12월 일행 6명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탈출하다, 그곳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중국으로 넘겨져 체포 50일 만에 중국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북한에서 8개월간의 모진 고문으로 죽기 일보 직전 다시 탈출해 현재 태국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내가 자유를 위해 행동한 것이 고문의 이유였다”라고 절규했다.

중국과 러시아, 몽골 등에서 떠도는 탈북자의 숫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십 만에 이른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친절한 조선족이나 한국의 구호단체 등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중국인들에 의해 “노예 노동"을 강요당하게 된다. 현행법상으로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국경 조약에 의해 탈북자들을 붙잡으면 무조건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탈북자들이 계속해서 죽음의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는 중간에 잡혀서 죽으나, 가다가 죽으나 어차피 한번 죽는 목숨인데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의 땅에서 숨쉬어 보겠다는 일념에서이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는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 대북 포용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될까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송되지 않고 제3국 행에 성공한 길수 가족의 서울행은 세계의 비상한 관심과 2008년 올림픽 유치라는 대사를 앞두고 있었던 중국의 정치적 부담과 이미지 관리라는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 느낌이다.

정부의 소극적 노력에 반해 “길수 가족 구명운동본부…” 등 무엇보다도 민간 단체의 적극적인 활동과 대처를 빼놓을 수 없다. 길수 가족을 보면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제2, 제3의 길수 가족이 생겨나 80년대 초에 있었던 80여만 명에 이르는 월남 난민의 보트 피플 실상이 탈북자 중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인권을 부르짖고 있는 정부는 이들을 위해 어떠한 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나?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국제 사회와 유엔의 지지 요청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 의원들이 중국 정부에 대해 탈북자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각각 의회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는 최근 보도는 수십만 탈북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대에는 “10명의 간첩보다 1명의 탈북자를 잡자”는 표어가 생겨날 정도로 대대적 탈북자 단속이 한창이라고 한다. 우리는 말살된 그들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해왔으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정부는 탈북자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탈바꿈해 민족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힘써야 한다.

탈북자 문제를 놓고 국내 NGO들은 국제 사회에 탈북자의 실상을 알리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민간 단체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탈북자를 위한 특별한 기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뜻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한 금액으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정부의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기회에 한국 기독교계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탈북자 지원 단체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 교회적으로도 탈북 난민을 돕는 선교회를 구성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갈 수도 있다. 여유 공간이 있는 교회에서는 임시보호소도 꾸며 볼 수 있다.

그리고 남한에서의 적응을 위해 탈북자와 성도들과의 자매 결연도 필요하다. 서울의 모 교회에서 탈북자를 위한 복지시설을 건축한다는 보도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이야말로 내 동포를 늪지대로부터 구하는 길이며, 한 걸음 나아가 한 차원 높은 선교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탈북자들이 난민의 지위를 부여받는 것을 비롯해 정부와 민간 단체, 그리고 기독교계의 적극적이고 항구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박대훈(청주서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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