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세워주세요”
상태바
“하나님,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세워주세요”
  • 승인 2001.08.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빠, 이렇게 어떻게 살아 그냥 나 죽을래”. 새까맣게 그을린 한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동생을 바라보며 “괜찮아, 그래도 살아 있잖아. 우리 포기하지 않기다”라며 오빠도 흐느끼고 있었다.

전신 2도 화상. 하얗던 피부는 새 까맣게 변했고, 손이며 얼굴이며 형체를 알아 볼수 없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유치원 교사를 꿈꾸던 한 소녀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시련에 감사하며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지선이의 주바라기’(www.ezsun.net)
꿈 많은 20대의 소녀 이지선(24).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큰 사고를 당한 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절망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주바라기’에는 너무도 애절한 그녀의 희망을 엿 볼 수 있다. 올해 4월에 문을 연 이곳에는 사건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놓았고 그때 그때 지선양의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절망을 이겨내는 한 소녀의 씩씩한 이야기들을 보기 위해 많은 네티즌들이 그녀의 사이트틀 찾고 있다.

1년 전, 주일예배를 마치고 찬양을 흥얼거리며 88도로를 달리던 남매는 술취한 운전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너무나 절망적인 사건을 당하게 된다. 술을 마신 운전자는 이미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치다 그녀가 타고 있던 차를 받았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 차에 치이고 저 차에 받히고 순식간에 남매가 타고 있던 자동차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뒷자석 틈에 낀 채 불에 타고 있었다.

사고를 구경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인심 좋은 택시 기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아 남매는 불과 한동안 씨름을 해야 했다. 얼마 있지 않아 화염에 휩싸인 차는 폭발했고 급하게 달려온 구급차에 실려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전신 2도의 화상, 폐에는 가스가 차고, 뇌도 손상을 입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를 외치던 그녀는 이내 혼절하고 말았다.

성한 곳 하나 없는 화상의 흔적
사고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생사의 갈림길을 왔다갔다했다. 심한 화상의 경우 대개 일주일이 고비였고 당시 병원에서는 그녀를 살 가망이 없는 환자로 분류했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기 때문이다. 불에 그을린 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해 붕대로 싼 얼굴에 구멍이라고는 눈, 코, 입밖에 없고 이전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기적처럼 그녀는 버텨냈고 중환자실에 있던 40일 간, 그 침대에 있었던 환자 중에 살아난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사고 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께 투정부리며 떼를 쓰던 그녀는 생사를 가름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않고 자신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늘 담대했던 것만은 아니다. 7개월 동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올 때면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 나보다 아팠나요? 그래도 예수님은 3일 만에 끝나기나 했지.. 난 벌써 7개월 째에요…. 예수님도 나만큼은 안 아팠을 꺼라구요.’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이젠 공포로 변해가면서 감히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작년 가을, 손가락 끝이 모두 바싹 타버려서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손들고 찬양해야 하는데, 이 손이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마음을 다친 가여운 아이들 치료하며 살고 싶은데,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혹시 주님의 사역에 방해가 될까봐 그녀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던 것이다.

일그러진 손이 부끄럽지 않게
지금, 지선이는 그녀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그 불편한 손에 힘을 주어 엄지손가락으로 주바라기의 동역자들에게 글을 남긴다. 그녀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바라기’에 힘을 쏟는 이유는 이만큼 고생해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남을 울리기 위해, 동정을 받기 위해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살 수 있을거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녀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살리셨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각박한 하루살이에 지친 모두가 ‘지선이의 주바라기’ 앞에 앉아 잠시 쉬면서 하나님도 만나고, 상처를 치유하는 작은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선양에게는 누구보다 든든한 친구가 있다. 이정근, 바로 자신의 ‘오까’(입이 닫히질 않아 한동안 그녀는 오빠를 오까로 불렀다)다. 기억하기도 싫은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그녀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사고가 나고 그는 한번도 동생의 아픔을 잊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도 불구덩이 속에서 동생을 구하느라 손에 화상을 입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와 함께 구급차에서 병원으로 향하면서 살기 힘들 것이라는 간호사들의 말과 자신의 눈에 비친 동생의 모습 속에서 희망은 기도할 수 없었다.

한참을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고통스러운 동생을 향해 “지선아, 잘 가. 지선아, 너 너무나 좋은 딸이었고 동생이었어. 누구보다도 예쁘게 착하게 살았고 그렇게 평생 널 잊지 않을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조금만 기다려. 지선아 잘가”라는 체념을 늘어놨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동생을 구해내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고통스런 삶을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너무도 씩씩하게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동생 옆에서 그의 빠른 쾌유를 위해 헌신하는 일등공신이다. 아직도 가슴 속에 많은 상처와 후회가 남아있지만 이렇게 1년을 동생이 더 버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새로 알게 된 하나님의 축복
그녀에게 사고 전에 축복이란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곳에 살며 멋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인줄 만 알았다. 그래서 남을 위해 축복송을 불러줄 때나 기도를 할 때에도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진정한 축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곧 미국에 가서 심리학 공부를 할거에요. 병원에서 화상 환자를 만나보면 외상보다 자신의 모습에 비관하는 심리적 아픔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자면 다른 것들을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 막연한 희망을 주는 선교사보다는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잖아요.”

오늘도 ‘하나님 지선이예요’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바라기 이지선.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새 살을 만드실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그녀는 희망을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다.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삶을 포기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인생은 정말 귀한 거에요”를 외치며 희망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는 꿈을 말이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