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담아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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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담아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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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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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핵집 목사<열림교회>


유난히 무덥던 공기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고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가을이 주는 계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풍성한 열매의 계절? 화사한 옷들로 차려입은 나뭇잎들의 변신? 귀찮게 따라 다니던 땀들을 살 속 깊이 숨어들게 하는 그것들일까?
 

가을이 주는 의미는 무엇보다 낮아지는 것 일게다. 자신의 몸을 채우기 위해서 뜨거운 여름철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드렸지만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할 때를 안다. 열매들은 나뭇가지에 붙어 몸부림친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순순히 농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난다. 그러기에 우리 곁에는 풍요로움이 있지 않는가?

푸르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자신의 옷 색깔을 바꾸고 나면 그 옷을 벗을 줄 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래 오래 자랑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화려한 뒤안길을 알고 있기에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연의 순리가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왜 우리는 계절에 민감하고 철 따라 옷을 바꾸어 입는 것에는 둔감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변화를 싫어하는 것일까? 자신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서는 것이 편한 삶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의 추함이 있다.

가을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것들이 아래로 내려와 낮은 것들을 섬기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높이 달려있던 열매들이 땅속으로 다시 들어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다. 그 아름다운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 냄새나는 거름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가을의 계절에 자연의 질서를 통해 삶을 생각해 본다. 높이 있는 물은 아래로 흘러 커다란 바다를 이룬다. 높이 있는 물은 소리가 크지만 아래에 있는 물은 가장 크고 넓고 소리가 없다. 그래서 바다라 하지 않는가?

소리 없이 세상의 근원이 되고 소리 없이 자신을 주어 섬기는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묵상해 본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왜 감격하고 감사하는가? 왜 주님을 생각할 때에 그토록 감사할 일 뿐인가? 주님을 생각하면 왜 한없이 겸손해 지는가? 주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왜 그토록 낮아 질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자연의 순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낮은 자를 섬겼는가? 이 세상 누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준 일이 있던가? 나무에서 열매들이 미련 없이 떨어져 자신의 몸을 주듯이 주님은 자신을 미련 없이 주셨다. 주님의 이 큰사랑에 우리의 마음이 녹는다.

어디 신이 인간을 섬겼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아니 신이 인간을 위해 죽었던 일이 있던가? 신이 인간을 섬기고 인간을 위해 희생한 일이 ‘성육신 사건’이 아니던가?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밥이 되게 하셨고, 자신의 피를 끝없이 흘려 우리의 음료가 되게 하셨다.

길바닥에 미련 없이 자신을 떨어 뜨려 노란 양탄자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밟게 하는 은행잎을 닮았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주변을 살리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이제 곧 떨어질 나뭇잎에서 주님의 희생을 본다. 풍성한 과일을 한입 씹으면서 십자가의 주님의 몸을 생각한다. 걸으면서 먹으면서 모든 삶 속에 주님의 십자가가 있다.

한없이 아래로 낮아지고 끝없이 추락하는 것을 아파하지 않는 넉넉함을 배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이미 내 안에 살아 숨쉬는 떡이 있기에 가난하지 않다. 주변이 쓸쓸하게 변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온 누리를 더욱 풍요롭게 채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화려함과 풍성함이 있기에 더욱 쓸쓸한 계절인지 모른다. 햇빛이 있기에 그늘이 생기듯이 가을은 항상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함께 공존한다.

이 계절에 가을을 닮아 자신을 내어주는 일을 하는 것은 어떨까? 소리 없이 자신을 내어 주어 쓸쓸함을 고요 속의 풍요로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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