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삶을 통해 영성개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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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삶을 통해 영성개발하라
  • 송영락
  • 승인 2005.08.10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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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삶과 설교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무도 풍성한 영적인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명제이다. 여기에 연설과 설교의 차이점이 있다. 공중 앞에서 하는 연설은 숙련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설교는 거룩한 삶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과 설교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신학적인 배경을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에 능력이 있었으면”하고 소원하면서 이 진리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살전 1:5) 선포된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이 했던 설교는 그의 개인적인 삶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 2:10)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를 부여한 것은 그 자신의 삶의 질이었다. 요한은 주님의 말에 내재된 능력의 비결을 다음과 증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성령을 한량없이 받은 그의 삶의 질이 그의 말의 권위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7장 16-20절에서 주님이 하신 도전을 설교자와 그의 설교에 적용할 수 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 45) 마음의 상태가 삶의 질을 결정하고 말의 내용과 권위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삶의 방식과 설교의 권위는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

설교자의 삶 전반에 대한 경건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훈련의 결여 때문에 교회가 오늘날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건훈련 혹은 영성훈련의 중요성이 자리한다. 영성훈련을 회복하기까지 참된 부흥과 새로운 각성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설교, 특히 복음주의 교회가 당면한 최대 위험의 하나는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잘못을 저지를까봐 두려워서 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데 있다.

‘믿음만이 중요하고 내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취한 결과 경건훈련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을 오늘날 복음주의의 맹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설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설교한 다음 자신이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흔히 상상하듯이 육체의 특정한 죄의 대해서가 아니라 그는 그의 삶 전부를 생각하고 있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다는 의미는 육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억제하고 자갈먹이는 것을 의미한다. <정근두목사(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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