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사역은 내가 평생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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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사역은 내가 평생 가야할 길”
  • 김찬현
  • 승인 2005.07.2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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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의 손길을 필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원장 한재흥목사는 지금도 하루 5천원짜리 쪽방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노숙자들과 북한에서 생사의 길을 넘어와 이제 남한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 새터민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은 도시빈민사역을 위해 세운 단체.

한목사가 도시빈민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목사의 부친인 한용택목사 때문이었다. 평생동안 묵묵히 진행된 부친의 도시빈민사역을 보고 한목사 자신도 ‘평생 가야 할 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990년 예장통합 교단에서 목사 위임을 받은 그는 빈민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를 개척했다. 빈민지역에서의 공부방과 무료 진료소 등의 사역도 개척과 함께 진행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한목사는 교회와 빈민사역 두가지를 함께 하기보다는 한가지를 제대로 하자는 결단을 내리게됐다. 그래서 96년 말 교회를 사임하고 시작하게 된 것이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이었다.


그가 원장으로 섬기는 사단법인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은 자원봉사센터와 대구쪽방상담센터, 그리고 북한이주민지원센터 등 세 개의 부설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쪽방상담센터는 현재 6백여 명의 도시빈민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97년 그가 처음 쪽방상담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수없이 거리에 쏟아져나온 노숙자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98년도 IMF가 시작되고 난 뒤 대구역과 동대구역에는 노숙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어요. 아무리 IMF가 힘들어도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많은 노숙자들이 생겨나는걸까 하고 지켜봤더니 다들 노숙자 생활을 시작하기 전 쪽방 생활을 하고 있던 도시빈민층이었더군요. 하루 5천원짜리 쪽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IMF가 터지고 나서 그마저도 힘들어지자 급기야 거리로 쏟아져나온 거였습니다.”


그는 쪽방에서마저 밀려 거리로 쏟아져나온 노숙자들을 사회로 환원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쪽방상담소. 전국적으로 서울에 4개, 인천에 2개 대전과 대구에 각각 1개씩 있다고 한다. 쪽방상담소가 추진하는 대표적인 활동은 쪽방 밀집지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거리 제공. 하루라도 일세를 내지 못하면 방을 빼야 하는 절박한 사정의 쪽방 사람들에게 일거리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것이라고 한목사는 말한다.


무료 급식소로 나오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 제공, 몸이 불편해 무료 급식소로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한 반찬 배달, 피폐해진 이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 등이 주 사업이지만, 삶의 넋두리조차 들어줄 사람이 없는 이들을 위한 상담소도 운영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일 30명 정도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합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지원사업을 위해 정직원 4명과 파트 직원 3명, 자원봉사자들이 섬기고 있지만 반찬 돌리기나 야간 순회 봉사활동을 하기에는 벅찹니다”라며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서줄 것을 호소한다.


오늘도 순회봉사활동을 하느라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한목사. 그의 빈민사역을 향한 외길이 있기에 도시빈민가에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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