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띠는 신학논문-영성과 설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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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띠는 신학논문-영성과 설교(2)
  • 송영락
  • 승인 2005.07.14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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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안에서 자유로움이 건강한 설교

성령께서는 설교자가 말씀을 준비하는 동안에 도와주시지만 말하는 중에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설교를 준비할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열어 주심으로 설교자를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강단에 서서 말씀을 선포할 때에 성령의 능력주심에 대해서 열려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결코 설교준비를 게을리 하는 설교자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연구하고 세심히 준비한 제물 위에 하늘의 불이 임하는 것과 같다. 메시지를 준비할 때 도우신 성령께서 전달하는 순간에도 설교자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아무리 잘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준비에 의존하지 말고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역사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할한 것 가운데 최선의 것은 미리 생각하지 않은 것이며 설교를 준비할 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데 실제로 설교하는 중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영성이 충만한 청중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청중이 설교를 발 받아들이고 열심히 듣는 것은 설교자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부흥의 시기에 설교자들은 기도하는 일과 설교하는 일에 특별한 자유로움을 체험하기도 했다. 영성이 탁월한 설교자와 청중의 거룩한 교감이 설교를 감동적으로 만들며 가장 놀라운 체험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 설교를 듣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설교를 듣게 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고민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전달라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의 자리는 결코 설교자가 통제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통제하시는 장이기에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할 때나 전달할 때 언제나 성령님께 개방되어 있기 위하여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설교를 준비하는 전 과정뿐 아니라 특히 설교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자유로움이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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